좌)이천 설봉산성 성벽 축조 상태(1916년), 우)이천 설봉산성 문지 측벽(1916년)(출처:문화재청)
좌)이천 설봉산성 성벽 축조 상태(1916년), 우)이천 설봉산성 문지 측벽(1916년)(출처:문화재청)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백제의 옛 땅 설봉산성

<동국여지승람>에 설봉산(雪峯山)은 ‘이천의 진산’으로 나온다. ‘설봉산은 부의 서쪽 5리 되는 곳에 있는데 진산이다(雪峯山 在府西五里鎭山).’ 그리고 고적조에 ‘설봉산 고성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5천1백12척이다. 지금은 폐하였다(雪峯山 古城 石築 周 五千1百十二尺 今廢).’고 나온다.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 1656, 효종 7년)>에는 ‘설봉산 재부 서오리 산상유 고성(雪峰山 在府西五里山上有古城)’으로 <대동지지(大東地志, 1862, 철종 13년)>에는 ‘설봉산고성 석축 주오천일백십이척 비고운 일천오백보(雪峰山古城 石築 周五千一百十二尺 備考 云一千五百步)’으로 나오며, <이천부읍지(利川府邑誌, 1842, 헌종8년)>에는 ‘설봉산고성 석축 주 오천일백 십이척 금폐(雪峰山古城 石築 周五千一百十二尺 今廢)’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여지도서(與地圖書, 1760, 영조 36년)>에는 ‘왜성 재부 서 오리 설봉산상 주회 일천오백보 금폐(倭城 在府西五里雪峰山上 周回一千五百步 今廢), <이천부읍지(利川府邑誌, 1871, 고종 8년)>에도 ‘왜성 재 부서 오리 설봉산상 주회 일천오백보 금폐(倭城 在府西五里雪峰山上 周回一千五百步 今廢)’로 기록돼 있으며, <이천 부읍지(利川府邑誌, 1899, 광무 3년)>에는 ‘왜성 재부 서 오리 설봉산상 주회 일천오백보 금폐(倭城 在府西五里雪峰山上 周回一千五百步 今廢)’라고 나온다.

왜 설봉산성을 ‘왜성’이라고 기록한 것일까. 일설에 따르면 임진전쟁 때 일본군이 일시 주둔한 데서 이같이 왜곡되었다고 한다. 설봉산성의 본래 주인은 어느 나라였을까. 이천이 마한, 백제의 땅이었으므로 처음 백제에서 쌓은 것으로 보인다. 흙과 할석을 섞어 다져 쌓은 판축형태가 뚜렷이 나타나며 백제계 연질 와편과 토기편이 많이 수습되고 있다. 그런데도 백제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남천정이 아닌 ‘설봉(雪峯)’이 혹 백제 땅의 이름은 아니었을까.

<이천시지(利川市誌)>는 ‘백제가 이 지역에 진출한 시기를 3세기 후반~4세기 초반’으로 추정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이천 지역 지표조사를 통해 ‘이천시 전역에서 백제 토기가 수습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삼국 중 백제가 가장 먼저 이천 지역을 지배했던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산성은 해발 300여m의 설봉산 계곡을 감싸 안았다. 실측보고서에 따르면 둘레 1079m의 포곡식 산성이며, 면적은 8만 5880㎡이라고 되어있다. 산성의 전체 지형은 평면상으로 남~북 길이가 380m, 동~서 길이가 226m인 부정형의 장방형(長方形) 형태로 서벽의 북쪽과 중앙부분이 돌출되어 있다. 단면상으로는 남고북저(南高北底), 서고동저(西高東底)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는 1997년 12월부터 지표 및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칼바위 부근에서 저장용 구덩이(土壙)를 다수 발굴하였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그 안에서 수많은 백제 토기가 출토되었고, 또한 서벽 배수구에서 백제 토기의 특색인 삼족기(三足器)가 출토되었다고 했다. ‘설봉산성은 4세기 후반 경에 백제가 처음으로 축조한 석성(石城)이다.’라는 설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백제가 이처럼 장대한 석성을 구축한 사례가 없다.

복원된 성벽이 너무 신작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복원된 성벽이 너무 신작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무너진 성벽의 많은 부분이 새로 복원되었으나 원형을 그르친 것 같아 눈에 거슬린다. 너무 신작 냄새가 나고 있다. 오히려 무너진 일부는 그대로 존속이 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취재반은 산성을 돌면서 성저 부분을 보는 순간 “아!”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바로 포천 반월성, 남양주 대모성, 오산 독산성, 영월 정양산성에서 나타나는 고구려성의 구축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들여쌓기로 구축한 것이었다. 중국 지안 오녀산성, 환도산성, 국내성의 성벽을 보는 듯하다. 포천 반월성처럼 백제가 쌓은 판축성 위에 고구려가 견고한 성벽을 구축한 것이다.

돌의 다듬은 형태는 경기도내 여러 고구려 성보다 가장 완벽하다. 가장 잘 남아 있는 포천 반월성이나 오산 독산성에 견줄 만하다. 글마루 취재반은 성안의 곳곳을 답사하며 혹 고구려 흔적이 없는 가를 살폈다. 성 안 곳곳에는 삼국시대 와편과 토기편이 산란했다. 백제계 연질 선조문 와편을 비롯해 적색의 고구려계 와편이 다수 조사됐다. 많은 와편이 산란한 것은 이 성에 많은 군사들이 주둔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 단국대학교 박물관의 발굴로 드러난 대단위 건물지도 살폈다. 정면 9m, 측면 6.30m크기의 유지에서는 다듬은 주춧돌 9개가 정연히 배치되어 있었다. 신라가 남천정을 설치할 때 군주가 주거했던 관아터가 아닌가. 주변에서는 회색의 경질 신라 와편과 토기편이 산란하다.

장대지(將臺址)는 정상 밑 서쪽 능선의 비교적 평평한 부분에 원형대로 남아 있다. 우물터 2곳, 수구와 인접한 북문의 흔적 및 석전용 돌무더기도 여러 곳 남아 있다. 단국대학교 박물관이 1998~2005년에 걸쳐 여러 차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했으며 공개된 보고서의 요지를 간추려본다. 그런데 보고서는 이 성의 석성부분을 신라의 축성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석축이전 고지에다 보축한 것이라고 밝혀 본래 주인은 백제라는 것을 부연 설명하고 있다.

(전략) 성벽은 지형 조건에 따라 편축법(片築法)과 협축법(夾築法)을 이용하여 수직에 가깝게 쌓았다. 바닥 부분은 자연암반을 ‘L’자형으로 파고 그 위에 성벽을 쌓았다. 지반이 연약한 곳에서는 기둥 구멍이 1.9~2.2m 간격으로 확인되었는데, 바깥쪽 벽면에 목조 가구 시설을 설치하고서 성벽을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돌은 주변의 풍부한 화강암을 잘라 크기와 형태를 규격화한 뒤 성벽 바깥 면에 빈틈이 없고 정교하게 맞물려 쌓았다. 기본 규격의 성돌은 네모난 모습인데, 가로와 세로의 비율을 2:1 또는 3:1로 다듬었다. 성벽은 기본 규격의 네모난 성돌을 2~3단 쌓고서 중간에 1단씩 두께가 얇고 길이가 길면서 네모난 판상석을 놓거나 모든 면의 길이가 일정한 네모난 돌을 교대로 쌓은 뒤 뒷채움돌과 견고하게 맞물리게 하여 쉽게 붕괴되지 않도록 쌓았다.

성 안의 시설물로는 문터 1곳, 건물터 5곳, 치성 2곳이 남아 있다. 주변에 절벽과 암반이 풍부하기 때문에 자연암반의 화강석을 잘라 성돌로 이용하였는데, 암반을 자를 때 생긴 부석은 2차 가공하여 암반 사이의 틈을 메우는 데 활용하였다. 지반이 약한 곳은 기반토인 풍화암층을 단이 지게 깎아내고 2차 가공된 면돌과 깬 돌을 이용하여 쌓았다.

성벽과 성 안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를 비롯하여 철제 솥과 용기, 뚜껑 등의 취사용기류와 보습, 볏, 살포, 낫, 도끼, 망치 등의 철제 농공구류, 다양한 형식의 철촉 등 6세기 중엽~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들 산성은 신라에 의해 축성된 뒤 통일신라시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성에는 남장대터가 있는데, 남장대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적심초석 건물로 신라 경문왕 때 연호인 서문터 바닥 시설 아래에 묻혀 있는 수구는 설봉산성을 처음 쌓을 때 만든 것으로, 입수구 주변과 수구 안에서 세발토기와 함께 굽다리접시류, 항아리류 등의 백제 토기가 출토되었고 신라 유물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로써 보아 신라에 의해 석성이 축조되기 전에 백제 성곽이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후에 서문터는 크게 고쳐졌는데 이때 수구는 덮개돌 윗면으로 1~2m 이상 점토다짐을 하여 바닥시설을 한 뒤 그 위에 성문을 만든 모습이다. 아마도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였던 6세기 중반경에 개축하면서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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