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일주문 지나며

오현정

쉬어 가라 옷깃 잡던 동백나무 아래선
휴(休), 그림자가 경전이다

낯선 얼굴들이 법문이다

산문을 지나 너른 마당 올라가면
이제까지의 인연은 불이문(不二門)

돌항아리에 고이 담아
더 이상 엮지 않고 반듯하게 걷는다

만개한 붉디붉은 꽃 한 송이가 해탈이다

[시평]

사찰에 들어가기 위해서 처음 만나는 것이 다름 아닌 일주문(一株門)이다. 사찰 경내의 입구에 양쪽으로 하나씩의 기둥이 받들고 있는 문, 하나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이름이 일주문이기도 하다. 사찰은 잘 아는 바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는 신성한 공간이다. 신성한 공간에 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마음을 모두 버리고 정갈한 한 마음, 일심(一心)이 되어 들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일심을 의미하는 일주문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만월당을 지나는데, 지금까지 한 마음 오롯이 지니고 오느냐고 수고가 많았으니 이제는 좀 쉬었다 가라고, 동백나무 아래에서 ‘휴(休)’가 떠오른다. ‘휴’, 쉬면서, ‘휴’, 지금까지의 오롯했던 숨 몰아 내쉬면서, 내려다보니 나의 또 다른 모습인 그림자가 어려져 있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의 발견, 이가 바로 경전의 말씀 그대가 아니겠는가. 그런가 하면, 이 산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의 얼굴, 저 낯선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깨달음, 이가 바로 다름 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문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결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이(不二)의 가르침.

내가 나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될 때 나 비로소 어떠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을 바르게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문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리라. 화엄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만개한 붉디붉은 꽃 한 송이가 지닌 참모습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해탈의 경지, 이러함이 바로 시를 쓰는 그 마음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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