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배윤주

노을 보낸 어둠 속에 눈을 뜨는 가로등, 점점 달아오르듯 
양팔을 벌리는 빛의 등 뒤로 더욱 짙어지는 어두움
바람조차 한 올 퍼내지 못하는 치밀한 빛이여
가는 길을 밝혀주려 그 자리에
두 발을 묻었는가

쏟아 내리는 침묵의 빛을 너는 이슬처럼 밟고 가버렸고
네가 지나가 버린 투명한 자리
너를 보낸 불빛이 노을처럼 가득한데
불빛 아래
여전히
불 끄지 못한 가슴이 서 있다.

[시평]

어둠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걸까, 아니면 땅에서부터 차오르고 있는 걸까. 실은 하늘과 땅 모두 뒤덮으며, 천지를 점령하듯이 들어차오는 것이 어둠이련만, 마치 땅에서부터 차오르는 듯 느껴진다. 그 이유는 하늘에는 비록 지는 해이지만, 그 해의 잔영이 남아 있기 때문에, 희뿌연 빛이 하늘가에 잠시나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마치 어둠은 땅에서부터 차오르듯이 느껴진다.

노을이 산마루에서 스러져 버리고, 그래서 어둠이 서서히 점령해 오는 거리로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가로등은 그 자리에 마치 두 발을 묻은 듯, 그저 그 자리에 우둑하니 서서 어둠을 사르며 하나 둘 불들을 밝혀나간다. 그리하여 온밤 내내, 밝힌 불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마치 가슴 속 깊이 담고 있는 불 끄지 못하는, 그런 사연을 지닌 사람 마냥, 불을 밝히고 서 있다.

가슴 깊이 사연을 지닌 사람들은 알 것이다. 왜 저 가로등이 밤이 아무리 깊어져도, 불을 끄지 못하는지를, 그리하여 온몸으로 어둠을 사르고, 저렇듯 서 있는지를. 새벽의 희뿌연 여명이 다가오는 그 시간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붉디붉은 울음을 터뜨리며 서 있는지를. 가슴 어느 깊은 곳에 아픈 사연을 지닌 그 사람은 가로등의 그 마음을 알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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