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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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東周)시대에는 제후들의 패권다툼이 격화됐다. 천자의 권위는 이름뿐이었다. 서쪽에서 세력을 강화한 진(秦)은 주의 현왕(顯王)시대에 천자를 공격하고 구정(九鼎)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구정은 천자의 상징이었다. 놀란 현왕은 안솔(顔率)에게 대책을 물었다. 안솔은 동쪽 제(齊)의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대답했다. 안솔은 제선왕(齊宣王)에게 말했다.

“진은 대역무도합니다. 천자를 공격하며 구정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저희는 차라리 제에게 주려고 합니다. 주를 도우면 위기에 빠진 약한 나라를 구했다는 미명과 함께 구정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이보다 큰 이득이 있겠습니까?”

제선왕은 진신사제(陳臣思)에게 5만의 명력을 주고 동주를 구하게 했다. 진군은 즉시 철수했다. 제는 약속대로 구정을 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제로 간 안솔은 선왕에게 말했다.

“주는 제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구정을 대왕께 바치려고 합니다. 대왕께서는 구정을 어떻게 제나라로 운반할 생각이십니까?”

“양(梁)으로 통하는 도로를 이용할 생각이오.” “불가합니다. 양의 군신들도 일찍부터 구정을 얻으려고 갖가지 생각을 해왔습니다. 만약 구정이 양을 통과하면 분명히 빼앗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를 통과할 것이오.” “초는 더 위험합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구정을 탐냈습니다.” 결국 선왕은 안솔에게 대책을 물었다. 안솔이 대답했다.

“주는 일찍부터 대왕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구정은 보통 기름 항아리나 간장단지가 아닙니다. 제로 운반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새들을 모아 하늘로 운반을 하겠습니까? 토끼나 말을 모아 끌고 오겠습니까? 조각을 내어 들고 오겠습니까? 옛날에 주가 은을 멸하고 구정을 얻었습니다. 동도(東都)로 운반하느라고 솥 하나에 9만명의 인력을 투입했습니다. 9개의 솥이니 81만명을 투입하지 않았겠습니까? 호위하는 군사들이나 운반도구는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지금 대왕께 구정의 운반이 어렵다고 말씀드리지 않으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겠습니까? 서두르지 마십시오.”

“원래부터 그대는 구정을 줄 생각이 없었지 않소?”

“제가 감히 대왕을 속이겠습니까? 노선을 정해주시면 구정운반의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속임수를 사용할 경우는 반드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확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칫 상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발각되면 나중에 수습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선 상대가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나중에 변명할 충분한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주왕실에 쇠약해진 틈을 타고 열국이 각자 실력을 길러 패권을 노렸지만, 그들 사이에는 갖가지 모순이 중첩돼 있었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여러 나라들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안솔은 이러한 사정을 꿰뚫고 있었다.

서방의 강자 진이 구정을 노리고 침입하자, 동방의 강자인 제도 그것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선왕을 설득해 국가의 위기를 구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구정을 제에게 줄 생각이 없었던 그는 미리 선왕을 설득할 구실을 마련해뒀다. 과연 선왕이 구정을 달라고 하자 그는 비로소 구정을 운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해 설명했다. 그렇다면 선왕은 그의 말만 믿고 구정을 운반하는 것을 포기했을까? 그가 구정을 운반할 수 없었던 대답은 안솔의 말에 들어 있었다. 동주의 수도 낙양에서 제의 수도 임치까지는 먼 길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양과 초 두 나라만 언급했지만, 낙양과 임치 사이에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많았으며, 만약 제나라가 구정을 가져간다면 이들 나라들이 연합해 제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제왕이 쓴웃음을 지으며 구정을 포기한 이유는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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