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not caption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인종, 성별 정체성, 학력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로 학력이 포함돼 논란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력 지상주의를 넘어서 채용, 임금, 승진 등에서 학벌로 인한 불이익을 없애자는 취지로 발의했다고 한다. 이에 교육부가 “학력은 노력에 따른 합리적 차별로 보는 시각이 많고, 학력 대신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지표도 마땅치 않다”라는 이유로 ‘학력을 이유로 한 차별’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냈다가, ‘학력·학벌주의 철폐’라는 국정 과제와 모순적인 답변이란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며 수정안을 내겠다고 의견을 보류한 상태다.

차별금지법안은 한마디로 차이와 차별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느껴지는 법안이다. 국가에서 정한 커리큘럼을 대학교까지 16년을 성실하게 이수해 학력이 우수한 사람과 공부를 싫어해 학력이 낮은 사람을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하는 게 더 심각한 역차별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피눈물을 외면하고 알음알음 입사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니 맛을 들인 모양이다. 학창시절에 더 열심히 공부한 친구가 더 나은 대접받는 건 차별이 아닌 차이고 그걸 인정하는 사회가 공정한 세상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학력에 따른 차별을 없애자는 법안에 동의하는 의원이 자기 자식은 자사고, 특목고를 보내거나 외국 유학을 보낸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자식은 외고를 보내고 자사고, 특목고를 폐지하려는 정책은 ‘내로남불’이라고 인정했다. 학력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 테니 개천에서 가재·붕어·개구리로 살면서 행복을 느끼라고 선동하는 건 자기 자식은 용으로 살게 만들려는 꼼수다. 차별금지법 국민청원동의에 동의한 10만명의 사람은 아직도 기득권의 꼼수를 간파하지 못했거나, 학창시절을 성실히 보내지 않고 차별을 받는다는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학창시절을 성실히 보낸 사람이라면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1조 1항에 비추어 인간은 학력으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는 교사도 있다.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는 성별, 종교에 따른 차별과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의 척도인 학력에 따른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교사의 편협된 사고가 학생들에게 주입될 가능성이 커 문제다.

이 교사는 더 나아가 ‘학력’이 개인의 노력이 아닌 아빠, 엄마, 심지어 할아버지의 재력을 동원해 생긴 차이라고 주장한다. 필자가 강남의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학부모를 조사하니 70%가 명문대 학력을 지니고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다녔다. 6070세대인 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으로 좋은 학력을 얻은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열심히 공부해 강남에 살 자격을 얻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경제력이 없어도 공부할 의지와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나머지 30%의 학부모는 학력은 낮지만,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 강남에 살 자격을 얻었다. 경제력이 학력을 결정 짓는다면 이 30%의 학부모 자녀도 우수한 대학에 진학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필자는 그런 학생을 강남의 중학교에 근무하는 5년간 단 1명도 만나지 못했다. 경제력이 아무리 좋아도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학력은 쉽게 얻을 수 없다고 믿게 된 계기다. 높은 경제력이 공부에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분명히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학력을 차별이라고 분노할 시간에 더 노력해 그 차이를 극복하려고 한다. 학력을 갖추지 않고도 노력만으로 성공한 사례도 주변에 많다. 학력과 능력을 둘 다 갖춘 사람이라면 인정해야 정의로운 사회다. 국가가 개인의 노력으로 발생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누구도 노력하거나 발전하지 않으려 한다. 사회주의 집단농장에서 열심히 농사짓는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이나 수확량을 같게 배분하면 나중에는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게 되는 이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완전한 평등은 없다. 스스로 노력해 얻은 결과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 사회주의와 다른 점이다. 경제력이 부족한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공평히 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지, 학력으로 차별하지 않을 테니 노력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건 바람직한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다 같이 노력 안 해 다 같이 못사는 나라에서 누리는 평등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