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정판례씨의 집에서 한 인부가 방수공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7.5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정판례씨의 집에서 한 인부가 방수공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1.7.5

반지하 주민 대부분 독거노인

자비들여 수해 대책마련 공사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이틀 전에 비가 조금 왔는데도 물이 새서 방바닥이 축축한데 지난해처럼 비가 많이 오면 어찌해야 할지….”

전국이 본격적인 장마철에 접어든 가운데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살고 있는 장판례(89, 여)씨가 긴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널빤지를 깔아두고 건축자재로 널브러져 있는 방 안에서 방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번 장맛비는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자는 생각으로 사비를 털어 낸 고육지책이다.

지난 3일부터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됐다. 보통 장마는 제주부터 시작해 남부·중부 지방으로 장마전선이 올라가면서 비 피해가 심해진다. 하지만 이처럼 같은 날 전국에 장마가 시작된 해는 이례적으로 이전까지 총 5차례(1973년·1980년·1983년·2007년·2019년)만 있었다.

응암동 일대는 반지하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례적인 전국 동시 장마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비가 내리자 급하게 공사에 들어간 주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노약자들이었고 정부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 자비를 들여 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었다.

반지하 주택에서 4년째 살고 있는 장씨는 “가장 큰 걱정은 건강”이라며 “허리와 엉덩이가 아파서 지팡이 짚고 겨우 다니는데 지난해처럼 비가 많이 오면 이제는 감당하지 못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3일 비가 조금 왔는데도 건강 때문에 지난해처럼 고생할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방수 공사를 100만원주고 맡겼다”며 “지난해 장마철에 물난리가 나서 밤잠 못자며 장판 다 걷어내고 물을 퍼날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물을 빗자루로 쓸고 고인물을 바가지로 퍼서 창문 밖으로 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며 “물을 말리기 위해 보일러까지 가동해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가스비가 7~8만원이나 나왔다”고 하소연했다.

주민센터나 구청에는 도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장씨는 하수구에서 물이 역류하지 않아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것과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기계만 빌려줄 수 있다는 답만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물이 방안에 얕게 있어서 기계를 쓸 수도 없었다. 주민센터에 쫓아가서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관계자들이 (이야길) 듣지도 않았다”며 “도와줄 가족도 없어서 같은 처지에 친구가 도와줘 그나마 지난해는 넘겼다. 4년 동안 계속 물난리가 반복돼 이번에는 이렇게는 두면 안 될 것 같아 공사를 맡겼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김순금씨의 집 앞마당에 공사한 흔적이 있다. ⓒ천지일보 2021.7.5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김순금씨의 집 앞마당에 공사한 흔적이 있다. ⓒ천지일보 2021.7.5

또 다른 반지하 건물 앞마당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비닐로 덮은 공사흔적이 있었다. 건물 계단을 반쯤 내려가니 입구가 있었다. 열려 있는 문으로 보이는 거실에 한 어르신이 목장갑을 끼고 큰 대아에 마늘을 까고 있었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는 김순금(77, 여)씨는 방에 있던 손자를 불러 취재를 응했다. 손자인 김태석(28, 남)씨는 “지난해 (장마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지난 3일 갑작스러운 장마소식에 보수공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400만원을 사비로 들여서 이번에 양수기를 설치했다”며 “반지하라서 비 피해가 심각하다. 군데군데 곰팡이와 습기로 인해 냄새가 나서 문을 닫고 생활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하수구가 역류하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아울러 근처 하천도 범람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며 “양수기를 설치해도 연세드시고 편찮으신 할머니 혼자 계시는데 지난해처럼 비가 많이 오면 난감하다”고 우려했다.

주민센터나 구청의 도움과 관련해 그는 “집 자체에 생긴 개인문제라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면서 “타지에 있는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런 정보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한편 은평구 응암동 주민센터는 지난 4월 21일부터 이틀간 반지하주택 주거환경개선 정비계획 용역 주민설명회를 개최해 이 일대 반지하 주택 건설방안과 지역 여건에 적합한 개발 방식 조사를 마치고 관련 내용을 주민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응암동 일대 약 15만㎡를 4개 구역으로 구분해 주민참여 주택개량과 공공주도 주거환경 개선 복합방안이 제안됐다. 주민참여형 주택개량사업은 구역 내 선도사업지를 선정한 뒤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시행하면 지하 2층~지상 10층, 공동주택 160가구를 건립할 수 있다.

공공주도형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반지하에 청년공유 오피스, 도시녹화 등 커뮤니티 시설을 유치하거나 1층을 필로티 구조로 설계해 다양한 건물 개량이 가능하다. 다만 일각에선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주민들이 있어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김순금씨의 집 안방에 틈이 갈라져 물이 새고 곰팡이가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7.5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김순금씨의 집 안방에 틈이 갈라져 물이 새고 곰팡이가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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