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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사동궁(寺洞宮)의 간호부(看護婦)로 활동하다가 대동단(大同團) 사건에 연루되었던 최효신(崔孝信)의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인물을 발견하게 됐다. 그 인물의 성명(姓名)은 김응집(金應集)이었는데, 동아일보 1922년 5월 9일자에 김응집과 최효신이 혼례(婚禮)를 올린다는 기사가 게재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김응집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 관련 행적을 조사하는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혼인(婚姻)할 당시 최효신은 개성에 위치한 호수돈 고등보통학교(高等普通學校) 교사(敎師)로 재직 중에 있었으며, 김응집은 중앙청년회관 교육부에 소속돼 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덧붙이면 김응집과 혼인한 최효신은 사동궁의 간호부로 활동했던 최효신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한 근거는 사동궁의 간호부 최효신은 1897(광무 1)년생이며, 김응집의 부인 최효신이 혼인할 당시 25세로 나오니 연령(年齡)이 일치한다는 것이며, 또한 성명의 한자(漢字)가 일치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김응집의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필자가 오랜 세월 독립운동가 발굴하는 활동을 했으므로 그동안 전혀 몰랐던 새로운 독립운동가를 발견하게 돼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그동안 본보(本報)에 정약용(丁若鏞)을 시작으로 여러 인물의 생애를 소개했으며, 그중에는 독립운동가 안창호(安昌浩)도 포함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독립운동가 김응집은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 조사한 내용을 근거로 소개한다.

김응집의 본적(本籍)은 서울 적선동으로 돼 있으나 어디에서 탄생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모른다. 1896(건양 1)년생으로서 현재 배화여고(培花女高)의 전신(前身)인 배화학당(培花學堂)의 교사로 재직했으며, 종교교회(宗橋敎會)의 신도(信徒)로서 민족의식(民族意識)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응집이 어떤 경위로 배화 학당의 교사로 재직할 수 있었는지 그 내력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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