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not caption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는 고리(古里)라는 마을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다의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그 이름도 원전과 함께 유명해졌다. 고리는 남쪽, 서쪽, 동쪽이 바다로 둘러쌓인 반도부로 파도가 세다. 동쪽 바다에는 효암 방파제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아이포(화포), 핵광마을이 있다. 아이포라는 이름은 아이개로서 작은 개라는 뜻인데 조선시대에 봉화대가 생기면서 ‘화포(火浦)’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미 불을 다루는 봉화대와 지명 속에 불(火)이 있었으니 이곳에 꺼지지 않는 용광로 원전이 건설된 것도 우연은 아닌 듯 싶다.

고리하면 원자력발전소가 바로 연상되겠지만 원전 아닌 다른 것, 바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자 세계 희귀종인 ‘고리도롱뇽’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국가적색목록에서 멸종위기범주로 평가되는 ‘고리도롱뇽’은 이곳 원전이 건설된 기장군 고리에서 처음으로 발견돼 이름이 고리도룡뇽이 됐다. 고리를 비롯 경상남도 일부지역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으로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훼손 및 환경파괴로 가까운 장래에 멸종할 가능성이 큰 종으로 보호되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양산 LH 사송지구에서 공사도중 고리도롱뇽이 발견돼, 서식지 보전과 부지 내 서식환경 안정화를 위해 환경부에서 공사 중지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원전 건설로 인해 가뜩이나 서식 환경이 열악해진 고리도룡뇽의 서식지로 알려진 곳에 또 다시 대규모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우려를 금치 못한다. 바로 고리 인근 마을인 장안읍 명례리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하겠다는 부산시의 계획이 수립됐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지난 6월 3일 6만평 규모의 산업폐기물 매립장 설립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민간 사업자로부터 접수받았다고 밝혔다.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산 71-1번지 일원 보존녹지지역에 산업폐기물을 매립할 수 있는 매립장을 설치하기 위해 사업자가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이다.

산폐장 설치를 추진하는 이 지역 일원은 산림지대 계곡 및 습지가 조성된 지역특성상 고리도롱뇽과 같은 양서·파충류의 집단서식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관할 지자체인 기장군에 따르면 몇 해 전 부산연구원에서 실시한 자연환경조사 보고서에 사업예정지가 포함된 해안산지 권역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고리도롱뇽’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장안읍 주민들도 실제 이 지역에서 ‘고리도롱뇽’을 촬영한 사진을 제시하며 이곳이 고리도룡농 서식지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멸종위기 생물종인 고리도룡뇽이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환경 보존지역에 산업폐기물 매립장 설치를 추진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해당사업지 인근은 문화재보호구역이고 그곳에는 천년고찰 장안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장안사 계곡은 반딧불이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장안의 맑고 푸른 자연을 활용 치유의 숲 조성도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보호종인 고리도롱뇽과 반딧불이가 살고 또 서식지 복원을 위해 주민들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전녹지로 지정된 토지의 용도까지 바꿔가며 6만평 규모의 산폐장을 짓겠다는 사업계획이 수립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폐장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 주민들 역시 청정 자연환경 훼손은 물론 거주환경의 악화와 주민 건강권 침해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가뜩이나 방사능 폐기물이 임시 저장되고 의료폐기물 소각장 증설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에 6만평 규모의 산업폐기물 매립장 조성까지 추진되자 ‘내고장 청정 기장을 쓰레기장으로 만들 셈이냐’며 절규하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2004년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천성산터널공사로 도롱뇽 집단 서식지의 파괴가 우려된다며 지율스님이 단식투쟁을 하며 반대한 적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천성산 도룡뇽을 지킨다며 단식을 하던 지율스님을 직접 찾아간 바가 있다. 정부와 부산시는 이번 장안읍 도룡뇽 서식지의 경우도 그 정도까지의 관심이나 노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도룡뇽 서식지에 대한 실태조사와 보전 대책을 수립하는 정성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즉각 산업폐기물 매립장 설치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도룡뇽 서식지를 보존하고 도룡뇽을 보호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 스스로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