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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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초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국민권익위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다고 통보한 소속 국회의원 12명 전원에 대해 탈당을 권유했다. 물론 반발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 실제로 억울하거나 불합리한 측면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송 대표는 “우리 당이 왜 의원 모두의 동의를 받아 전수조사에 임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며 ‘선당후사’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루속히 의혹을 해소하고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오기를 문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료 의원들의 억울함 보다는 국민의 신뢰, 국민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의혹이 불거진 만큼 앞으로 수사 당국의 조사를 통해 깨끗하게 털고 오라는 강한 메시지였다.

차기 대선을 불과 9개월여 남겨놓은 시점에서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깊은 수렁에서 아직도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지금도 고공 행진 중이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을 사실상 ‘루저’로 만들어버린 역대급 정책실패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더 참혹하다. 빚투, 영끌 등의 낯선 단어는 그 참혹한 현장의 형해화된 상징처럼 남아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3%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는 소식은 그 현장의 증언처럼 들린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다른 출구가 없었다. 아니 부동산 정책 외에 다른 정책을 말할 계제도 아니었다. 초토화된 부동산 정책 실패 위에서 다른 무슨 얘기가 통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국민권익위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 해 달라고 요청한 배경이다. 당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온 만큼 이제 와서 좌고우면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 결과대로 ‘탈당’을 권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억울함이나 섭섭함 또는 불합리한 요소 등을 배려할 여유도 없다.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를 뭉갠다면 굳이 전수조사를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권익위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한계는 분명하다. 따라서 그 한계를 경찰 등의 수사기관을 통해 털고 오라는 것인 만큼, 억울해도 달리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민심을 천심처럼 받들어야 하는 정치의 영역은 때론 이렇게 냉혹한 칼춤도 피할 수 없다. 송영길 대표인들 얼마나 고심이 많았겠는가. 그럼에도 송 대표는 큰 흔들림 없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경기지사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탈당 권유를 한 송영길 대표님과 당 지도부의 고뇌 어린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민심이란 게 그런 것이다. 물론 송 대표의 결단이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눈높이라면 과도해도 어쩔 수 없다. 정치는, 특히 집권당은 국민의 눈높이보다 더 높게 비상해야 한다. 아무나 집권당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국민의힘으로 넘어갔다. 당초 국민의힘도 부동산 투기에 대한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질타하던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당연한 주장이었다. 오히려 선제적으로 치고 나왔어야 할 이슈였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최근에야 감사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뒷북 대응’일뿐더러 국민권익위 대신 감사원 조사를 요청한 것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법적인 직무감찰이 아니라 ‘조사 요청’이라 하더라도 감사원이 쉬 동의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현희의 국민권익위’ 보다 ‘최재형의 감사원’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국민의힘이 정말 자신 있다면, 그리고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투기 의혹을 털고 가겠다면 국민권익위 조사를 회피할 이유가 없다. 국민권익위 조사가 오히려 더 당당하고 깔끔하다. 그럼에도 굳이 감사원 조사라는 ‘무리수’를 두는 속내가 못내 아쉽다. 그런 태도야말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감사원도 국민의힘이 요청한 부동산 투기 의혹 조사에 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의당, 국민의당 등 비교섭단체 5개 정당도 국민권익위를 통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민의힘도 결국은 국민권익위 조사를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시민단체 등의 조사 요청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힘만 따로 국민권익위 조사를 회피한다는 것은 그 자체부터 신뢰성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왜 처음부터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면밀한 검토도 없이 감사원 조사를 고집하다가 그 마저도 실패하기까지의 일련의 정치과정을 보노라면 다분히 정략적이며 동시에 당당함도 부족해 보인다. 국민의 눈높이서 본다면 구태의연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동산 투기사태를 질타를 했던 국민의힘이었다. 그 프레임이 오랫동안 작동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 바닥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대로 그 반사효과에 힘입어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비교적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런 추세는 거대 양당 중심의 극단적 진영논리가 빚어내고 있는 비극적 판세이긴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이라면 정치는 그 속에 있다. 그래서 다급해진 민주당이 먼저 국민권익위에 조사를 요청했던 것이며 그 결과대로 민주당은 결단을 내렸다. 이제 국민의힘이 화답할 시간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질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내년 대선에서 표를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실체가 더 궁금해진다. 민주당은 12명이나 나왔다. 그리고 엄정하게 처리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몇 명이나 나올까. 대선정국을 앞두고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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