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not caption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 지난해 11월 필자는 한 칼럼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번 대선에는 끼어들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검찰총장으로서 ‘반문 정서’에 기댄 대중적 인기는 정치권에 진입할 경우 ‘거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둘째는 검찰총장 임기를 마친 뒤 곧바로 정치판에 뛰어들 경우, 그가 몸담았던 검찰조직 자체가 자신의 대선용 조직에 불과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윤 전 총장이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조직을 위해서라도 정치판을 선택 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셋째는 윤 전 총장의 가정사 문제였다. 처가 쪽의 이런저런 의혹들이 ‘공론의 장’으로 옮겨질 경우 결국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윤 전 총장이 출마하지 않을 이유로 봤던 것이다.

나름 합리적인 전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최근 윤석열 전 총장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정치판을 노골적으로 기웃거리더니 이젠 자신의 동선과 사진까지 공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예 소규모의 대선용 캠프를 꾸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물론 정치판에 뛰어들든 말든 그건 윤 전 총장의 자유다. 그러나 몇 가지 짚어볼 대목까지 대충 묻어버릴 순 없다. 특히 내년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할 참으로 중차대한 정치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치밀한 검증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윤 전 총장의 정치행보를 읽어야 할 이유인 셈이다.

단순히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발판으로 ‘당위’를 지향하는 치열한 고민이 정치비평의 본류이다. 그렇다면 현실과 당위의 긴장관계를 통해 윤 전 총장의 정치행보를 짚어보는 것이 기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윤 전 총장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표출된다. 먼저 대선정국을 기웃거리는 언행과 그 방식부터 정직하지 못하다. 사방팔방 다니면서 이 사람 저사람, 그리고 알 듯 모를 듯한 상징과 은유, 심지어 자신은 숨고 대리인을 통해 ‘간’을 보는 듯한 태도는 구태를 넘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결심이 섰다면 이젠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설명해야 한다. 대선이 고작 9개월여 남았을 뿐이다. 아직 그런 결심이 없다면 나설 일도 아니다. 신비주의 계책이라면 전혀 신비롭지 않으며, 나름 전략적 행보라면 그건 하책만도 못하다. 지켜보는 국민은 짜증부터 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 신인다운 신선함이나 담대함도 없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더 불편한 시선도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정치검사’의 상징처럼 돼 있다. 아니 스스로 원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검찰총장 임기 중에도 노골적인 정치행보를 하는가 하면, 검찰총장 사퇴 직전에는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를 찾아서 사실상 ‘대선 출정식’ 같은 분위기도 연출했다. 현직 검찰총장으로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 정부를 비난하는 정치성 발언도 쏟아냈다. 정치검사의 노회하지만 그러나 해서는 안 될 정치행보였다. 겉으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외치면서도 스스로는 정치검사의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이제 그 승패를 건 싸움이 정치판으로, 아니 대선정국으로 옮겨질 태세다. 정치검사의 대선 도전 직행, 그것이 과연 헌법과 법치의 정신에 합당하며 한국 민주정치에도 바람직한 행태일까. 국민이 준 검찰권력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건 이미 검찰이 아니다. ‘검찰당’으로 불러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불행하지만 이번 대선도 결국은 두 거대 정당 중심의 ‘진영 대결’로 갈 것이다. 바로 그 진영 대결의 한복판에 윤석열 전 총장이 섰다. 이건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비극의 탄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 전 총장 자신이 이미 검찰개혁 과정에서 진영 대결의 한 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영 대결의 핵심 인물이 대선정국에 뛰어들었다면 대선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쩌면 ‘편가르기 싸움’의 끝판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설사 윤 전 총장이 대선 승리를 하더라도 비극은 끝난 게 아니다. 더 큰 적대감과 증오가 넘쳐날 것이며, 더 단단하고 예리한 칼날로 서로를 할퀴고 짓밟으며 또 5년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윤 전 총장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음해는 더더욱 아니다. 한국이 처한 현 상황을 직시하자는 고언이다. 진영 대결을 끝내야 할 판국에 그 핵심 인물이 대선정국의 중심에 선다는 것, 그것은 결국 대결이 아니라 ‘전쟁’으로 몰고 갈 개연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것이 비극의 배경이다.

어느 언론의 선동처럼 사실상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내전 상태’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윤석열 전 총장의 대선 참여가 이런 확신을 더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은 “내편이냐, 네 편이냐”만 남을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적’을 향한 무기가 될 뿐이다. 이처럼 저급한 편가르기 싸움에 검찰조직까지 끼어든 모양새가 참으로 가관이다. 윤 전 총장의 업보일 뿐이다. 아무튼 윤 전 총장의 가세로 인해 중요한 ‘대선 프레임’ 하나가 점점 명료해 지고 있다. 정치검사들의 천하가 이뤄질지, 아니면 정치검사들이 철퇴를 맞게 될지,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검찰에겐 또다시 ‘비극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윤 전 총장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검찰개혁을 향한 여론도 더 거세질 것이며, 검찰조직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더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역대급 검찰개혁 공약도 쏟아지겠지만, 그럼에도 검찰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의지는 ‘검찰당’이란 오명 앞에 난타를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여정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피할 수 없다면 운명이다. 다만 그 운명이 희극으로 끝날지 아니면 비극으로 끝날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