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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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가 과연 그 주인인 지역주민의 만족도를 충족시키면서 ‘풀뿌리 민주주의’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는 필요적 제도일까? 아니면 주민들이 있으나마나한 조직, 불필요한 기구로 생각할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지도 이미 오래다. 지방자치 실시 이전부터 기대해온 만큼 새로운 제도가 실현되면 주민생활에서 크게 변화될 줄 알았건만 지방자치가 부활된지 3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지만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지방자치는 되지 않고 중앙정부의 직․간접적 통제를 받는 제도적인 조직으로서의 느낌을 떨칠 수 없으니 참다운 지방자치의 길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법률안이 통과된 후 지방자치제도를 관장하는 행정안전부에서는 개정 법률에 대해 거창하게(?) 홍보하면서 “1988년 전부개정 이후 32년 만에 이루어낸 성과”라며 자화자찬했다. 낡은 지방자치 시스템을 새롭게 변화하겠다며 “대한민국에도 지방자치의 새 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했던바, 지금까지 지방자치의 행색이 구차했으니 많은 국민들은 과연 그런 시대가 올까 의구심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의 직접 조례안 발의와 특례시 운용의 채비가 마련됐다고는 하겠으나 지방의회 역량 강화와 함께 책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린다. 지금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의회와 의원들의 양태들을 살펴보라. 어느 지역의 지방의원들이 주민의 존경을 받으며,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인 지역개발과 주민복지 향상을 위해 충분한 법 지식을 갖고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기초의회 정당 추천을 제도화했으니 지방선거 때마다 공천을 바라는 의원이 국회의원 눈치 보느라 여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실정에서 정당을 달리하는 의원들 간 갈등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지방자치법상 의장․부의장 불신임제도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의장과 부의장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법령위반과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하지 않을 때는 응당 적법하게 견제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 전국 지방의회에서 벌어지는 ‘의장불신임’ 건은 자기 창이 없어지면 남의 창을 빼앗아서 함부로 남용하는 마치 ‘조자룡이 헌칼 쓰듯’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일쑤다.

지난해에는 서울동작구의회, 고양시의회, 목포시의회, 상주시의회, 양산시의회 등에서, 또 올해 들어 전남도의회, 경남도의회, 창원시의회에서 의장 불신임안건이 모두 부결됐고, 지난달 24일에는 과천시의회에서는 제갈임주 의장에 대한 ‘의장불신임’건이 가결된바, 발의의원의 제안사유와 의결상의 법적 문제와는 별도로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크다. 해임당한 제갈 전 의장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건이 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유를 충족하지 못했다며 위법 처리된 ‘의장불신임’ 의결에 대해 법원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제갈 전 의장이 법원에 ‘의장불신임의결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소를 제기할 경우 재판관이 법리를 살펴 잘 판단하겠지만 얼핏 보기에도 과천시의회가 의결한 의장불신임건은 절차적 위반과 실제적 위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장불신임건은 의장을 그 직에서 해임되는 신분상의 조치이므로 불신임사유가 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에 명시된 ‘법령을 위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을 때’로 한정해 실제적 위법성이 없어야 하고, 또한 그 처리과정에서도 절차적 위법성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과천시의회에서는 불신임안을 의결하면서 지방자치법과 과천시의회규칙에서 별도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는 ‘징계’에 관한 조문을 토대로 비공개회의로 전환해 주민 등이 공개 참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사천리로 의결했던 것이다.

의장·부의장에 대한 불신임 제도는 지방의원에 대한 ‘징계제도’와는 별도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불신임안 처리과정에서 징계에 관한 조항인 과천시의회회의규칙 제95조에 따라 비공개대상으로 전환한 것은 절차상 위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방자치법상 불신임 제도를 인정한 취지는 의장 또는 부의장의 직무수행 여하가 지방의회의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과천시의회 의장에 대한 불신임제도는 ‘의장으로서 직무수행에 국한’해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운영돼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발의의원의 ‘의장불신임’ 사유로는 ‘여당의원의 윤리심사에 적극 동참하고, 집행부에 유리한 안건을 상정했다’거나 ‘주민소환 청구인서명 열람을 시민의 알권리라는 이름아래 서명확인해 적극 참여했다’는 등 의회의 명예를 실추하고 기능을 마비시키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니, 이 행위들이 법령위반은 아닐 테고, 의장의 직무수행에서 정당한 사유인지가 관건일 것이다. 어떻든 과천시의장 불신임안건이 7명의 지방의원 가운데 국민의힘 3명과 민생당 1명이 찬성해 가결된 사실에서 정당 간 갈등에서 비롯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겠고, 그런 연유에서 온전한 지방자치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민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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