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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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지배’는 사람에 의한 자의적(恣意的) 지배를 부정하고 법에 의한 지배를 강조하는 원리로 영미법계에서 발전돼 왔고, ‘법치주의’ 즉 ‘행정은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 행해야 한다’는 원칙은 대륙법계에서 발전돼온 법제도 사상이다. 그 형성․발전돼온 토대가 서로 다르니 이질적 요소처럼 보이긴 하나 궁극적으로 양자는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한 법적 통제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볼 때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법사상들은 현대국가에 들어 행정수요와 공공복리 확대로 많은 변모를 가져오긴 했어도 국민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는 변함이 없으니 행정부나 의회의 적법성 담보는 소중한 가치가 되고 있다.

1991년 7월 1일부터 재개된 지방자치가 벌써 30년을 맞고 있다. 그렇지만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는 실질적 지방자치가 구현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세평이 주류를 이룬다. 이는 완전한 지방자치를 운영함에 있어 지방권한이 모자란다는 것이니, 중앙정부가 말로는 지방과는 협력관계임을 내세우고 있어도 재정통제 등 중앙우선의 벽에 막혀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방에서는 중앙 권한의 대폭적인 이양 등을 요구하는 실정에 있지만 지방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점도 지방자치의 외연적 확장에 한계를 주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를 이끄는 양대 축은 집행부와 지방의회이다. 그 가운데 집행부는 공무원이 법․규정에 따라 행정을 처리하고 있으나, 지방의회에서는 의원의 의정활동에서 의회 자율성이 무색하게 정당 개입 등으로 인해 자치정신 훼손과 관계법령 위배 등으로 물의가 따르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전남도의회와 경남도의회에서는 이해타산에서 비롯된 의장불신임 처리 문제로 홍역을 치르면서 지난 3월 부결돼 도민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또한 경북 상주시의회에서는 의장이 정당의 결정을 위배했다는 등 사유를 들어 지방자치법에 어긋나게 처리한 ‘의장불신임 의결’과 ‘신임의장 선출’건이 처리됐고, 법원 제소로 지난 5월 6일 법원 판결에서 위법성이 확인됐으니 한마디로 정당의 입김 및 지방의원들의 법적 무지에서 기인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건과 관련해 필자는 지난해 9월 본란에 ‘지방자치제도를 훼손한 상주시의회의 어설픔’이라는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내무행정을 오랫동안 수행해왔던 필자는 지방자치가 실시되기 이전부터 지방자치에 관해 관심이 컸고, 낙후된 지역의 개발과 주민의 복지증진을 향상시키는 ‘풀뿌리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정착되게끔 관련 글도 자주 써왔다. 그러던 중 2019년 10월경 대구시 동구의회에서 의결한 ‘의장불신임’건이 지방자치법 위배됐다는 지적을 해온 터라. 지난해 9월 상주시의회가 처리한 ‘의장불신임’건에 대해서도 위법적 의결을 지적했던 것이다.

당시 칼럼에서 ‘상주시의장에 대한 총 4건의 의장불신임 발의사유 중 정치적 이유 외에 (의장 재임기간중의) 직무와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또 ‘불신임안은 의장을 그 자리에서 해임하는 중차대한 것으로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준 뒤, 질의와 표결을 거쳐야 함에도 해명 기회를 박탈하고 적법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적시했었다. 불신임안 의결로 해임된 당사자의 행정소송에 따른 법원 판결을 보면 ‘피고가 2020. 9. 8. 원고에 대하여 한 의장불신임 의결은 취소한다. 피고가 2020. 9. 8. 안창수를 의장으로 선출한 의결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주문이 결정 났고, 대부분 내용들은 필자가 칼럼에서 지적한 위법 내용과 유사했다.

판결 내용은, 의장에게 신상발언 기회를 주지 않은 점과 투표방법에서 상주시의회 회의규칙을 위반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이고, ‘피고가 들고 있는 이 사건 불신임사유 모두는 지방자치법 제55조 제1항에서 규정한 불신임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불신임의결에는 실체적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불신임의결은 원고가 이 사건에서 주장하는 나머지 주장에 대해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위에서 본 절차상․실체적 하자로 위법해 취소돼야한다. 나아가 안창수를 의장으로 선출한 이 사건 선출의결은 이 사건 불신임의결에 기초해 이루어진 것으로 그 하자가 중대․명백해 무효라 할 것이다’는 내용이다.

행정안전부가 2012년부터 지방자치법령․판례 등을 엮은 ‘지방의회운영 가이드북’에서도 ‘의장이 되기 전 행위는 의장으로서 직무에 해당하지 않아 불신임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명시하고 있음에도 상주시의회에서는 이를 간과했고, 더욱이 ‘8대 전․후반기 의장선거에서 정당 결정 위반’을 불신임사유로 내세운 점도 발의 의원들의 무지와 횡포라 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초 해임 당했던 정재현 의장이 제기한 행정소송은 집행정지 소와 본안소송에서 승소가 확정됐으니,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끝이 났다.

이래저래 편 가르기 한탕주의에서 기인된 ‘상주시의장 불신임건’ 사건은 발의의원들의 위법행위로 귀착된 가운데, 한편으로는 지방의원의 의정활동은 정당과 무관하고 직무수행 능력을 길러 적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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