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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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이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후략).’

독일의 시성 괴테(1749~1832)가 쓴 시 ‘오월의 노래’ 일부다. 이 시 제목이 ‘오월의 축제’로 불러지기도 하는바 그것은 5월의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한편의 노래이자, 한바탕 축제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시인이 아니더라도 감수성 풍부한 젊은이라면 5월의 계절 앞에서는 환희와 희망으로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요란할 텐데, 더군다나 젊은 시인이 23세나던 1771년 봄, 프리드리케라는 또래의 여인과의 풋풋한 사랑이 넘치던 시절이었으니 5월의 하늘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처럼 시인 괴테의 가슴속엔 환희와 행복이 가득 넘쳐났으리라.

시기적으로 5월도 중순을 넘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 주는 기쁨으로 누구라도 가슴가득 환희와 행복으로 채워져야 할 오월이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슬픈 일이다. 5월의 역사 속에서 16일, 17일, 18일 연속 3일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주고 있는바 18일은 더욱 그렇다. 차마 그날을 어찌 잊겠으랴. 군화발 위정자들이 위력을 앞세워 민주주의 제도를 침탈하고 국민을 마음껏 유린했던 날이 아니던가. 그러한 몹쓸 짓의 불의가 세상에서 낱낱이 밝혀지고, 단죄 받아야 마땅하건만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는 게 안타깝다.

지난 18일, 오후 5시 18분 광주에서는 오월의 노래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앞서 언급한 괴테의 ‘오월의 노래’가 아닌 비장함을 머금은 시민들의 추모 노래였다. 이 땅의 자유․민주가 군화발에 짓밟힌 1980년 5월 18일, 의기롭게 ‘자유․민주’를 외치다 희생된 열사들의 넋을 추모하면서 ‘5.18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행사였다.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기념하는 시민들과 가수들은 ‘상록수’와 ‘아침이슬’을 불렀고,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거리에 울려 퍼졌다.

그렇지만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역사를 뒷걸음치게 하면서 수많은 민중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반(反)민주 군부 인사들이 한 망나니 행적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알려진 바로는 신군부는 정권을 잡을 계획으로 조작화된 ‘북괴남침설’을 흘리면서 당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했고, 5월 17일 24시 부로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다음날 18일에는 공수부대가 전남대와 조선대에 투입됐고, 이에 맞서 대학생들과 광주시민들은 시내에서 민주항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시민을 지키자’는 의도에서 시민군으로 호칭됐던 시민들은 21일 시내 중심지 전남도청을 본거지로 삼았던 것인데, 며칠 후 신군부 지휘부의 명령을 받은 계엄군들은 27일 무력으로 전남도청을 진압하고 시민군들을 거침없이 몰아냈던 것이다.

당시 시민군들이 5월 21일에서 27일까지 전남도청에 머물렀지만 전국계엄으로 확대된 18일 이후부터 광주지역은 전화가 불통됐다. 광주지역 이외의 국민 누구도 보도․통제된 언론에서 나오는 기사거리 외에는 광주의 참상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전남도청과 유일하게 연락되는 행정전화가 내무부(현재의 행정안전부)에 있었다. 그 때 내무부에 근무한 필자는 전국계엄령이 발포된 5월 18일부터 며칠간 궁금했던 광주소식을 행정전화를 통해 도청 공무원 또는 시민군과 통화하면서 지역 분위기를 직접 들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까마득히 기억속에 남아 있다.

당시 내무부에는 통신망이 여럿 있었는데 근무자 책상마다 설치된 전화기 1대로 잭을 이용해 일반전화, 행정전화, 경비전화로 직무를 수행했던바, 행정전화는 시․도청을 비롯한 전국 지방행정기관과의 통화가 가능했다. 계엄 확대후 광주지역간 일반전화가 불통되면서 유일한 통로 행정전화가 요긴하게 사용됐는데 도청 직원의 대피로 정상 업무가 마비된 후에도 행정전화를 걸면 시민군들이 대신 받아 친절하게 응대해주었고, 궁금해 하면 현지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다. 그들의 언행으로 봤을 때 시민군들은 폭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신군부에 의해 폭도로 낙인찍히는 등 유린돼 처참히 무너졌고 역사마저 왜곡된 그해 5월이었다.

다시금 ‘오월의 노래’를 회억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괴테의 시 ‘오월의 노래’는 한 사람 또는 연인간 감미로운 사랑 이야기이지만 5.18민주화운동 후 불러진 또 하나의 ‘오월의 노래’는 앞서간 선구자들의 거룩한 희생을 기린, 광주시민뿐만 아니라 우리국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맴돌 엘리지(悲歌)다. 분명 광주를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며 이 땅의 자유․민주를 지키려다 꽃잎 지듯 산화한 죽은자를 위한 산자의 가슴 아픈 헌가(獻歌)인만큼 오랫동안 기억해야 하리라.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렇듯 봄이 가고 꽃 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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