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면 글로벌 디지털 패권 전쟁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고사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최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무조건 유럽을 벤치마킹하기보다 미국과 중국 등 빅테크 기업을 보유한 국가 틈바구니에서 생존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플랫폼 지정학’ 트렌드와 한국 플랫폼의 역량과 처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국가 전략적 마인드를 갖출 것을 주문했다.

토론회에서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 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공정위, 방통위, 중기부 등 정부 부처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는 플랫폼 규제 법안이 국회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며 “유럽과 우리 시장 차이를 무시한 무분별한 유럽 규제를 따라하다가는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 우리 기업이 고사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최근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온라인플랫폼 경쟁이 치열하며, 초국적 기반을 둔 플랫폼 기업들이 자국 국가기관 및 제도에 기대어 활동하면서 ‘플랫폼 국가 자본주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플랫폼은 일종의 새로운 ‘영토’며,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아 자국 플랫폼 없이는 경제성장 기회를 얻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주권’도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준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팀장은 “자칫 성급하게 독점 규제론만 강조하다가 혁신 견인론, 사회 인프라적 역할론, 패권 대응론 등 디지털 플랫폼이 다방면적 역할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실적으로 해외 플랫폼을 규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국 플랫폼이 가지는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선 혁신, 후 규제’ 혹은 자율 규제로 전략적 틀을 잡고, 사회적 혁신 인프라론과 플랫폼의 혁신 유발성을 강조하는 것이 중견 플랫폼국가가 취할 수 있는 생존 경로”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중 간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유럽연합(EU)에서 지난 5월부터 시행된 디지털시장법(DMA)과 비슷한 규제를 국내에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전규제’ 도입을 포함한 ‘온라인플랫폼법’을 새로 제정하거나 기존의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서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과 우리나라는 시장 상황이 다르고 이를 무시한 벤치마킹은 오히려 우리나라 플랫폼 업계를 고사시킬 가능성도 있고, 유럽의 디지털시장법 미국 빅테크를 규제하기 위함이나, 규제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규제는 한번 신설하고 도입하면 폐지하거나 수정하는 게 어렵다. 새로운 규제의 신설이나 강화에 있어서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그동안 규제개혁을 통한 성장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지나친 규제는 창의력을 옭아매고 혁신을 가로막으며 성장을 저해한다. 또한 규제가 당초 의도와는 달리 국내기업만 규제 대상이 되고 해외기업은 빠져나가 국내기업만 피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플랫폼 규제도 토종 플랫폼만 규제 대상이 되는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또한 포털과 검색 등 토종 플랫폼이 글로벌 빅테크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자국 플랫폼을 보유한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혁신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국내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기보다는, 국내 플랫폼기업을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디지털 혁신 서비스가 창출되고 경쟁력을 증진시키는 육성정책이 더 필요하다. 디지털 전쟁의 와중에서 정부는 다른 나라에 앞선 규제는 지양하고 미래를 보는 투자와 지원으로 플랫폼산업을 육성하고 디지털 전쟁에서 ‘디지털 주권’도 지키고 경쟁력 제고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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