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아마존이 미국 전역에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 ‘아마존 클리닉’ 사업을 시작했다. 축농증, 알레르기, 여드름, 탈모, 편두통 등 경증 질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하고, 온라인 약국을 포함해 모든 약국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정보통신(ICT)과 의료가 융합한 혁신 서비스인 원격진료가 미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격진료가 떡잎부터 잘릴 운명에 놓여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 위기 단계가 하향되면서 6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전환됐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합법화 이전까지 시범사업을 실시하며, 대상 환자 범위, 초진 확대 여부, 약 수령 방식 등 제도를 주기적으로 평가·보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동안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이 원하는 대상 환자 범위와 약 배송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달 말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끝난다. 대부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사업 중단 기로에 섰다. 모빌리티 분야 ‘타다’에 이어 또 하나의 혁신서비스가 제도와 기득권 장벽에 막혀 좌초될 우려에 있다.

현재 복지부의 시범사업에 따르면 초진 환자는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없고, 약 배송도 안 된다. 초진 환자의 이용을 허가하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 이미 대다수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은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나마 벤처캐피털(VC) 등 외부 투자유치에 성공한 일부 기업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마저 생존을 위해 사업전환을 준비 중이다. 계도기간이 끝나면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진료 이용은 어려워지고, 전화상담 같은 기존 형태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혁신의 퇴보다. 실제로 룰루메딕, 메듭, 썰즈, 파닥, 체킷, 바로필, MO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용자 규모가 대폭 줄어도 서비스 유지보수료, CS 대응 등 쏟아야 하는 시간과 비용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플랫폼사들의 연이은 서비스 종료를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자문단 회의를 통해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마저도 원활하지 않다. 6월 자문단 회의 출범 후 7월에 단 한 번의 회의만 열렸다.

대한약사회가 구축한 처방전달시스템(PPDS)과 플랫폼 간 연계도 요원한 상황이다. 약 배송이 막히면서 플랫폼사들이 처방전달시스템(PPDS)과 연계할 이유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굿닥이 연계돼 있지만 굿닥은 비대면 진료 처방전 전송을 약사회 처방전달시스템으로 전달한다. 전달시스템 가입 약국이 1만 3000여 곳인데, 하루 평균 10여건의 비대면 처방전만 이 시스템을 이용해 약국에 전송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의 불안감도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이달 말 시범사업 계도기간 종료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비대면 진료 서비스가 중단되고, 남은 일부 서비스도 사업전환을 준비 중이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보건복지부가 구체적인 방향성 정립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월 중 비대면 진료 내용을 담은 의료법 등이 국회에서 통과될지 미지수이지만, 법률이 통과되더라도 시범사업 내용과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가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률을 참고해 시범사업 지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나친 의료규제로 인해 비대면 진료는 물론 디지털 헬스케어 전반이 후퇴하고 있다. 실제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 등에 뒤처져 있다. 원격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보건복지부가 적극적으로 개입, 국회는 물론 비대면 진료 이해관계자 여론을 충분하게 수렴해 서둘러 결론을 내야 한다.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책이라도 도출해야 한다. 차선책이라도 사실상 비대면 진료의 싹을 자르지 않는 안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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