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오는 6월 1일 시행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세부 방안이 공개됐다.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구체 방안을 마련했다.

시범사업은 초진을 배제하고 재진만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대면 진료 시에도 약 배송은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섬·벽지 환자와 감염병 확진환자, 휴일과 야간 소아과 진료 등은 초진을 허용하는 쪽으로 보완책을 마련했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허용 이후 환자는 물론 의료인까지 적극 활용해 3년여 동안 1419만명이 3786만건 비대면 진료를 이용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비대면 진료 만족도 조사 결과 ‘재이용 의향이 있다’는 답변이 87.8%에 달했고, 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서도 87.9%가 ‘향후 비대면 진료 활용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민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정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 예외는 있지만 재진만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코로나19 기간 3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이 허용됐던 초진 허용을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서 배제한 것이 타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의료계 등 이익단체 반발에 굴복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약 배송도 원칙적으로 허용이 안 된다. 예외적으로 초진이 허용되는 환자에 한해서만 약을 배송하고 재택 수령이 허용된다. 약 배송 허용, 이 또한 약사회 등 이익단체의 반대 논리에 산을 넘지 못한 것이다.

발표된 정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방안에 대해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초진 허용과 약 배송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두 가지 핵심사업이다. 모두 빠지면서 ‘반쪽짜리’ 시범사업이 됐다고 하소연 한다. 신규 혁신 서비스가 전통사업에 막혀 후퇴했다. 이른바 ‘제2 타다’ 사례가 재현됐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이용자의 99%가 초진 환자인데, 초진을 막으면서 재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플랫폼 안에서 확인할 수가 없다. 환자 스스로 재진 여부를 증명하라는 것은 서비스 이용에 장애물을 갖다 놓은 꼴이라고 한다. 업체에서 환자의 초진 정보를 재진 시 활용하려고 해도 관련 내용은 개인정보로 사업자가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도 없다.

또한 초진을 한 의료기관이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도 문제다. 초진을 한 의료기관이 비대면 진료를 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시급한 상황에서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비대면 진료 이용 이유가 심야 시간대,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없는 환경 등임을 고려할 때 장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약 배송의 경우에도 진료는 비대면으로 받고 약은 대면으로 수령하라는 계획안은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과 효과가 크게 감소하는 등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 방안이 비대면 진료 산업은 물론 이용자인 환자들의 입장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초진 허용 시 실제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지, 약 배송을 허용할 경우 오배송 문제나 남용 우려가 있는지는 시범사업을 통해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처럼 초진이 불가하고 배송 자체를 막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선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방향과 범위가 아쉽다. 다만 비대면 진료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료계에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진료 시범사업을 하면서 문제점을 냉정히 파악해서 보완점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시범사업을 하면서 이해집단의 이익이 아닌 전체 국민이 원하는, 국민의 의료 편의와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비대면 진료 제도를 개선하고 지속 발전시키길 기대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