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부여’라는 이름은 과거 백제의 마지막 국호 남부여(南夫餘)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남조(南朝)인 양(梁)나라와 가장 친밀하게 지낸 성왕(聖王)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성왕은 왜 백제라는 국호를 버리고 ‘남부여’라고 했을까.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북부여국의 정통을 잇는다는 선언이었으니 대륙에 대한 향수는 물론 백제 왕실의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이다. 사실 백제 시조로 일컬어지는 온조는 고구려 왕 주몽의 아들이 아니었다. 소서노의 전 남편이었던 부여 왕족 우태(優台)의 소생이었다. 그래서 소서노는 주몽의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노신(魯迅)은 중국의 근저에는 도교가 있다고 했다. 한대에 시작된 도교는 중국의 토속종교로 현실에서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고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생이란 즐기기 위해 존재하므로 사람은 당연히 삶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교는 죽음에서 초연하고자 하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모든 교의는 기본적으로 ‘강락(康樂)’ 즉 건강과 즐거움이 바탕이다. 고대 사회에서 유행했던 양생술을 흡수해 독특한 수련법을 발전시킴으로써 건강과 즐거움을 추구해 왔다. ‘삶과 도는 하나(生道合一)’이며, ‘오래 살고 죽
25일은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이다. 이날 대한불교 조계종을 비롯한 각 종단에서는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봉축 법요식을 봉행해 그 뜻을 새기며 기념한다. 이미 지난 주말에는 각 종단 총무원장과 불교계 주요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 종로와 광화문 등 전국 일대에서 연등회가 펼쳐졌는 바, 특히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태극기등’이 행렬등으로 등장했고 ‘평화통일 한반도등’과 ‘마애삼존불등’도 선을 보여 연등회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이처럼 불교 종단과 신도들은 매년 음력 4월 8일이 되면 불교 창시자인 석가모니를
부처(붓다, Buddha)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소승불교 교리에서 28부처 중 하나지만 일반적으로 부처라 하면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석가모니(싯다르타 고타마)의 전설에 의하면 히말라야 산 아래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은 싯다르타가 집을 나가지 않으면 위대한 성왕이 될 것이고, 비참한 세속의 현실과 구도자를 보면 출가해 부처가 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싯다르타의 아버지는 아들이 성왕이 되기를 바라며 7세부터 학문에 전념시키고 아름다운 아쇼다라 공주와 결혼시켰으며 4만명의 무희도 궁중 안에 두
한병권 논설위원 달라이 라마는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하워드 커틀러로부터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조금도 망설임 없는 그의 대답은 “그렇다”라는 것이었다. “외롭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달라이 라마는 “전혀 외롭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 자신 매순간 모든 인간 존재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주위 사람들을 볼 때 늘 긍정적으로 보며, 나와 공통된 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발견하기 때문에 늘 행복하고 늘 함께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단기서(段祺瑞)는 안휘성 출신의 군벌로 북양의 호랑이라 불렸다. 1881년, 은덩어리 하나를 들고 2천리를 걸어서 산동성 위해로 아저씨 단종덕(段從德)을 찾아갔다가 이홍장(李鴻章)이 세운 북양무비학당 포병과에 들어가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1889년, 관비로 베를린군사학교 포병과에 유학했다. 2년 후 귀국해 무비학당 교관이 됐다. 1895년, 원세개의 신식육군건설에 참여해 의화단을 진압하면서 북양군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왕사진(王士珍-용), 풍국장(馮國璋-표범)과 함께 북양의 호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24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는 성서의 구절이 있다. 여기서 악하고 속이는 사람은 악한 영(靈)이 함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며, 그들은 종교 말세가 되어 더욱 악해져 속이고 자신도 속는다는 것이다. 즉, 악한 세상 거짓된 세상을 주도하며, 삶의 본질도 종교의 근본도 모른 채, 많은 사람들을 곁길로 인도하고 있으며, 또 이를 좋게 여기며 따르고 있으니,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전쟁과 평화’라는 말이 있다. 이 두 단어는 늘 상존하지만 주지하는 바대로 극과 극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인류가 태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반복돼 왔다. 아니 어찌 보면 평화가 언제 있었는가 할 정도로 전쟁의 연속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이는 인류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 우리의 삶 자체가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벌이는 한판의 승부요 전쟁이다. 그래서인가 성서의 역사도 전쟁의 역사다. 성서를 보면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으로 나뉘어져 있다. 즉, 하나님과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1592년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했다. 공교롭게도 조선이 건국된 지 200년이 되는 해였다. 일본은 ‘가도정명(假道征明)’ 즉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친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부산과 동래를 공격하면서 일본의 침략목적은 명나라이므로 조선이 길을 열어준다면 싸우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일본군의 침입전략은 교묘했다. 이 구호로 조선은 명나라로부터 일본과 모의해 중국을 칠 수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막다른 길에 몰린 조선이 지원을 요청하자, 명의 조정에서는 중국군을 유인하려는 조선의 책략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다.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글자 그대로라면 종교는 세상의 수많은 가르침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으뜸인 가르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이승에서 가장 바람직하게 살고, 저승에 가서는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다.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기도하면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다. 편견을 버리고 대부분의 종교를 자세히 알아보면 이승에서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다. 행복한 삶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승으로 가기 전까지 질병에 걸리지 않고 사는 것도 중요한 요
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고대 로마제국이 천년 넘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국가에 대한 관용 덕분이었다.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 등 로마가 정복한 나라의 사람일지라도 공을 세울 경우 시민권을 주었다. 시민권을 받은 식민지 사람들은 로마에 살지 않더라도 로마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행사했고 이 때문에 자신들도 로마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득한 시절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많은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로마의 후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로마의 식민지 동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까지 치고 들어가 제국을 건설한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한산사(寒山寺)는 옛 소주성에서 서쪽으로 십리 정도 떨어진 풍교고진(楓橋古鎭)에 있으며, 불교가 극성을 부리던 양(梁)의 천감(天監)연간에 건설됐다. 이 일대는 작은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다. 일반적으로 절은 산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산사는 수많은 물길 사이에 얌전히 앉아 있을 뿐이다. 당대의 시승 한산자(寒山子)와 습득(拾得)이 이곳에서 노닐었다. 대웅전을 돌아가면 한습전(寒拾殿)이 있고 그 안에는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한산자와 묵묵히 귀담아 듣는 습득의 조상이 있다.
참으로 많은 사연을 담은 갑오년(甲午年) 청마는 을미년(乙未年) 청양에게 희망찬 새해를 안기고야 말았다. 광복 70주년이면서 분단 70주년이라는 기막힌 역사를 가진 민족이기에 새해는 그 어느 해보다 기대 만발하다. 광복이라 하지만 분단이라는 비애와 함께했기에 애초에 온전한 광복은 아니었다. 남과 북이 하나 될 때 비로소 광복이 올 것을 예단했을 뿐이며, 남과 북의 평화통일은 세계평화의 첩경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스승이기도 하다.암울해 보이기만 한 남과 북의 관계, 나아가 통곡과 죽음의 소리로 아비규환이 된 세계, 그 어디를 봐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부모은중경’은 석가가 제자 아난에게 부모의 은혜를 설법한 불교경전이다. 천수백년 동양의 정신을 지배해온 불멸의 저술이며 불가의 성전(聖典)이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은 채 수미산(须彌山)을 백천 번 돌더라도 다 갚을 수 없다는 글이 나온다. 아! 부모의 은혜에 대해 이처럼 뭉클하고 설득력 있는 명문장이 있을까. 게송(偈頌.禪詩) 하
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한ㆍ중ㆍ일의 문화 차이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보인다. 동질성만큼 변별성도 큰 것이 한중일의 문화다. 동질성으로는 같은 한자문화권, 유교와 불교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황색인종으로 외모가 닮았다. 그리고는 나머지는 상당부분 다르다. 문화가 다르게 발전한 핵심적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중국은 인물로 이야기하면 황제 중심의 황제문화로 ‘힘’을 상징적인 요소로 발전한다. 일본은 무사로 상징되는 ‘칼’의 문화다. 한국은 선비로 상징되는 ‘붓’의 문화다.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어낼
‘예부터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한국은 속아왔다는 분석이 작금에 와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친미 성향이 강한 쪽에선 바로 반론과 반발부터 준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실이냐에 관심을 둬야 한다. 미국의 전략과 태도를 지적하면 진실여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색깔론으로 접근한다. 우리가 분명히 할 것은 진영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우다보면 진정 알아야 할 진실은 덮이고 묻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실 아닌 것이 진실이 되어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게 되고, 거짓과 왜곡의 역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빨간 물이 들지 않았다면 누가 민
최상현 주필 불교 선방(禪房)에서 적절히 때때로 사용되는 수행법의 하나가 棒(방, 봉)과 喝(할, 갈)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수행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불성(佛性)을 깨우치는 길에 매진, 집중토록 하기 위해서다. 문자가 의미하는 대로 ‘방’은 ‘몽둥이로 내려치기’이며 ‘할’은 ‘대갈일성’을 내지르는 것이다.‘방’을 수행법으로 활용한 이는 중국 당나라 때 선종(禪宗)의 명승 덕산(德山)이 유명하며 ‘할’은 역시 당나라 때 덕산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스님 임제(臨濟)가 유명하다. 그들은 각각의 효시자로 돼 있다. 이래서 ‘
고려 우왕 3년(1377)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直指)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유산이다. 이 책은 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스님이 만년에 성불사(成佛寺)에 정처하며 팔만대장경의 경구가 될 만한 아름다운 가르침과 수많은 고승들의 언행을 모아 엮은 것으로 ‘직지심체요절’이라고 부른다. 즉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글을 줄여 ‘직지’라 한 것인데 이는 ‘참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종교는 이상주의의 완결판이다. 이상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상가는 결국 신비주의적 종교에 의지한다. 종교는 현실의 좌절이 반영될 때 비로소 강한 생명력을 확보한다. 전쟁과 같은 인위적 수단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물질적, 정신적 영화를 쟁취할 수 있다면 과연 내세의 천국이 필요하겠는가? 따라서 인격신의 절대적 권위에 의존하는 종교가 발달하는 배경에는 대체로 약소민족 또는 국가가 있다. 유럽에서 오리엔트라고 부른 오늘날 중동지방에서는 지중해를 사이에 둔 그리스 또는 로마문명과
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정신세계를 연 동양의 유교와 물질세계로 세상을 이해한 서양의 자본주의가 한반도에서 충돌하고 있는 현장이다. 사상의 시장이 벌어진 곳이 한국이다. 한국은 거대한 사상의 실험장이며 시장이다. 우선 세계문명을 이끌어온 사상으로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이 있다.동양사상은 정신에 중점을 둔 사상이고, 서양사상은 물질에 중심을 둔 사상이다. 우리 민족이 가진 사상은 정신에 기반을 둔 유학과 불교, 선교가 가진 사상이었다. 그리고 서양의 사상은 물질에 중심을 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다. 서로 많이 다른 사상이며 다른 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