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색안경을 끼고 보면 다 그 색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빨간색 안경을 쓰고 있으면 바라보는 사물의 색이 흰색이어도 빨갛게 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을 벗지 않는 한 절대 본래의 색을 알 수 없다.사람은 공존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공존이라는 말은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이며, 이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그런데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공존’이라는 말은 그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자기가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이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요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주요 논란거리 중 하나는 ‘목회자 이중직’ 허용문제다. 먹고 살기 힘드니 목회자들이 다른 일을 하도록 교회법으로 ‘허락해야 된다, 안 된다’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교회가 이렇다보니 당연히 교회와 교인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던 CBS를 비롯한 기독언론들의 형편도 예전 같지 않다. CBS는 경영난으로 이미 2009년 이전부터 노조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그나마 교회 후원금 덕에 아직까지 버티고 있지만, 교인 급감으로 교회마다 재정이 악화되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이 와중에 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가 탄생시킨 문학이 있다. 그 문학은 후대가 그 시대를 들여다보게 하는 창(窓)이 된다. 조선조 광해군 때, 사회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정치사회소설 ‘홍길동전’이 그 한 예다. 홍길동전은 시대의 풍운아이면서도 이단아였던 허균에 의해 지어진 최초의 국문소설이기도 하다. 먼저 저자 허균의 면모를 살펴보면, 당대 재상 허엽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서자(庶子)라는 신분으로 인해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역정을 살았던 정치인이며, 나아가 당대 최고의 여성운동가이면서 여류 시인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허난설헌의 이복동생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산동성의 성도 제남은 수많은 샘과 대명호라는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수옥천(漱玉泉)은 송대의 유명한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와 인연이 깊다. 그녀는 수옥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샘물을 거울로 삼아 화장을 했다. ‘수옥천’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세설신어(世說新語) 배조(排調)’에 나오는 ‘수옥침류(漱玉枕流)-샘물이 솟아나는 소리가 마치 옥돌을 씻는 것과 같다’라는 글귀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다. 맛깔스러운 운치가 돋보인다. 다른 하나는 치아가 옥과 같은 여인이 이
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프랑스를 급히 방문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프랑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유럽예선이 치러지는 통일골든벨 행사를 참관하는 것과,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 선생의 고발 소설집이 프랑스판으로 번역, 출판돼 지난달에 개최된 파리도서전에 출품했고 그때 계획했던 방문 일정이 연기되면서 교민사회와 프랑스 지성인들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다.16년 만에 찾은 프랑스였다.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켜는 순간 연신 자국민 보호차원에서 날아오는 긴급문자는, ‘파리테러 대비 신변주의 요망’이라는 단어로 조금은 걱정스런 파리 일
3월이 오면 생명 희망 소망 같은 단어가 절로 생각난다. 특히 3월이 오면 만세소리와 함께 독립과 광복이라는 그날의 벅찬 감동이 오버랩 된다. 이는 97년 전 3월 1일 탑골(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3.1독립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날의 함성은 26년 후(1945) 8.15 광복을 가져다 준 시금석이 됐다. 그날의 함성은 잠자고 있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독립과 광복의 의지를 일깨운 무저항 평화운동이었다. 또 그날의 함성은 민족지도자 33人으로부터 시작됐으나 우리는 민족지도자라 하기 이전에 종교지도자 33인(기독교 16, 천도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흔히 ‘땡초’라는 말은 스님을 비하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스님들이 염불에 전념하지 않고 시정잡배처럼 일탈행위를 하면 이런 조롱을 받는다.그러나 그 어원은 ‘당취(黨聚)’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 배불(排佛)에 저항하여 일부 승려들이 참선과 의로움을 행하는 단체를 조직, 이를 ‘당취(黨聚)’라 불렀다고 한다. 이들은 전국 사찰에 조직원을 심었으며 여기에 참여 한 스님들을 ‘당취승(黨聚僧)’이라고 했다.근세 황해도 구월산 패엽사(貝葉寺)에 땡초가 문수보살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하은(荷暘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통일신라가 이룩되던 시기에 불교를 넘어서 민족의 통합을 주도한 위대한 사표였던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은 화엄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헌신했다. 두 고승은 라이벌이자 환상의 콤비였다. 당의 불교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다가 원효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부처의 법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섰고, 의상은 화려하고 장엄한 세상을 여는 대당제국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름을 떠나 각자의 근기에 따른 장대한 행보였다. 중국은 서진이 멸망한 이후 오랜 분산의 시기를 지나 수당시
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달력을 보니 달랑 한 장이 남았다. 올해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허전한 느낌마저 드는데,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를 아직 듣지 못했으니 더욱 서운한 감이 든다. 필자가 자주 외출하지 않은 탓이겠지만 지난 주말 서울역에 나가 지하철을 타면서 살펴봐도 자선냄비를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불경기 여파로 구세군의 자원봉사자들이 흔드는 종소리에 힘이 없어 보인다는 주변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비단 구세군 냄비뿐만 아니라 종교·사회단체나 개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소중하고
한병권 논설위원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를 지어 추모하였는데,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 중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는지라,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을 방문했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나무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대나무로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계급질서를 유지하면서 공리적 배분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인도의 종교사상가이자 역사학자인 사르카르이다. 그는 역사의 원동력을 경제나 정치권력이 아니라 문화라고 생각했다. 우주는 비드야(Vidya)와 아비드야(Avidya), 즉 내향과 외향, 축소와 확장, 연민과 분노가 맞서서 투쟁하는 거대한 장이다. 음양론과 유사한 그의 인식은 물리적 우주와 사회적 우주에 모두 적용되는 영원한 속성이다. 개인은 우주라는 영적인 존재와 융합돼야 한다. 사르카르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자본주의의 탐욕적 속성을 무시하고
한병권 논설위원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원효굴에 원효가 없다(?).”주말에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과 자재암을 들렀다. 모처럼 힐링을 겸해 붉은 단풍과 국화 축제를 보며 가을 정취를 즐겨보자는 생각이었다. 가뭄 탓으로 단풍은 아직 절정을 이루지 않았다. 하지만 노란 단풍잎이 땅에 떨어져 겹겹이 쌓인 소요산의 추색은 아름다웠다. ‘이 길이 요석공주와 설총이 걸어 다니던 길이려니, 대사의 거처는 위쪽 자재암이었고, 아들과 함께 수행을 하던 곳이 이곳쯤이려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오르는데 새로 단장하고 있는 석굴이 눈에 띈다.
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박 선생! 이 가을을 어떻게 잘 보내시는지요? 온 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중국여행을 떠나와 낯선 여행지에서 소식을 전합니다만 지금쯤은 설악산과 오대산 단풍이 절정기를 이루고 있겠지요. 그 사이 저는 카이펑(開封)여행을 마치고 뤄양(洛阳)에서는 숭산, 소림사, 용문석굴 등 이곳 유명 관광명소를 둘러보았답니다. 가는 곳마다 중국 각지에서 관광 나온 인파들로 넘쳐났고, 가을 산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어 그 풍경들이 아름답기 그지없지요.지난주에 여행 와서 맨 먼저 들른 개봉은 중국 북송시대 화가 장
동국대 사태와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된 직영사찰 서울 봉은사 사태를 맞아 불교 조계종이 시끄러운 편이다. 많은 불자들이 어떻게 잘 해결될까 걱정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스님)에서는 문제가 된 봉은사 주지에 원명스님, 서울 조계사 주지에 지현스님을 새로 임명했다고 7일 밝혔다. 그동안 종교계 안팎으로부터 원성을 받아온 조계종 내부 분위기를 쇄신시키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핵심 주지 두 자리를 교체한 것이다. 이번 조계사 새 주지에 경북 봉화의 청량사 주지 지현(智賢)스님이 임명됐다. 시골의 작은 사찰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공주시 중심인 반죽동에 백제시대 큰 절이 있었다. 절은 폐사되었으나 큰 가람터였음을 알려주는 당간지주는 역사의 잔영이다. 여기가 바로 백제시대 가람 ‘대통사(大通寺)’가 있었던 곳이다. ‘대통’이란 크게 통한다는 뜻인데 부처의 지혜와 자비가 널리 퍼지기를 기원 한 것인가. 이 대통사터는 어떤 역사와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일제강점시기 절터에서 수습된 연화문 수막새가 현재 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주 천도시기에 제작된 와당으로는 아름답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와당은 중국 남조(南朝) 양나
예부터 우리 성인들은 ‘서기동래(西氣東來)’라는 말을 해 왔다. 이 말은 ‘서쪽의 기운이 동쪽으로 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쪽의 기운이라 함은 서학, 즉 서양의 철학과 문예부흥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 사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듯 서양의 부흥을 가져다 준 기독교 사상이 21세기를 기점으로 그 기운이 쇠하여져 동쪽으로 옮겨 온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말은 약 오백년 전 조선이 낳은 유학자 겸 예언가인 ‘격암 남사고’ 선생이 최초로 예언하고 사용했다. 즉 ‘서기동래(西氣東來) 구세진인(救世眞人) 진사성군(辰巳聖君) 정도령(正道
한병권 논설위원 A씨는 선비의 고장 안동 출신 중앙행정부처 공무원이다. 행정고시 31회 출신으로 공직 생활에 입문한 A씨와는 통일부 출입기자와 당국자로 처음 만났다. 자물쇠를 채운 듯 입이 무거웠던 그와 필자가 가까워진 계기가 있었다. 불자(佛者)로서의 인연이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알 수 있었다. 필자가 놀란 것은 하루를 빠듯하게 보내야 하는 직장인인 그가 마치 고시 공부하는 학생처럼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퇴근길에 어김없이 조계사 선방에 들러 출가한 수행승처럼 가부좌를 틀고 화두 참선을 했다. 피곤한 심신을 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이미 30년 전 얘기다. 일본에 사는 여대생 두 명이 백제 시기에 조성된 서산마 애삼존불을 답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에서 마애불까지는 7㎞ 거리로 당시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두 여대생은 저녁노을이 어둑어둑해지는 비포장 길을 걸어 마애불을 찾아갔다. 당시 부여문화원장이였던 고(故) 이석호씨가 마침 마애불을 답사하고 돌아가는 길에 두 여성을 만났다. 재일동포인 이씨는 시골 길을 걷는 두 일본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물었다. “여성분들이 이 밤중에 어딜 가십니까?” 두 여성은 자신들은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여유창해미귀인(旅遊滄海未歸人),사의고정망북신(徙倚高亭望北宸).청초만당가절과(靑草滿塘佳節過),도화영락전잔춘(桃花零落殿殘春).너른 세상 떠돌다가 돌아가지 못하고,높은 정자에 기대어 북쪽 대궐을 바라본다.푸른 풀 제방에 가득하니 좋은 시절은 가고,복사꽃 떨어지며 봄날은 간다.사명대사께서 무려 7년을 끈 임진왜란을 마무리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때 우에노(上野)의 죽림원(竹林院) 벽에 적었다는 시이다. 음력 3월이었으니 남국은 이미 초여름이었으리라. 우에노는 도요토미정권을 무너뜨린 도쿠가와정권이 새로운 본거지로 건설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부여’라는 이름은 과거 백제의 마지막 국호 남부여(南夫餘)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남조(南朝)인 양(梁)나라와 가장 친밀하게 지낸 성왕(聖王)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다. 성왕은 왜 백제라는 국호를 버리고 ‘남부여’라고 했을까.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북부여국의 정통을 잇는다는 선언이었으니 대륙에 대한 향수는 물론 백제 왕실의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이다. 사실 백제 시조로 일컬어지는 온조는 고구려 왕 주몽의 아들이 아니었다. 소서노의 전 남편이었던 부여 왕족 우태(優台)의 소생이었다. 그래서 소서노는 주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