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폼랩스 권도형 최고경영자(CEO) (출처: 야후파이낸스 유튜브 동영상 캡처)
테라폼랩스 권도형 최고경영자(CEO) (출처: 야후파이낸스 유튜브 동영상 캡처)

檢, 폰지사기 혐의 수사 검토

피해액 5억 이상 시 직접 수사

국세청, 조세포탈 고발 가능

한국지사 해산에 수사 어려워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 사태로 국내에서만 28만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가운데 검찰이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권 대표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또 그가 탈세로 수백억원을 추징당했다는 점을 들어 조세포탈 혐의로도 수사 선상에 올릴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UST를 사서 맡기면 연 20% 수익률을 보장하는 ‘앵커 프로토콜’ 시스템이 폰지사기(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다단계 금융사기)에 해당하는지다.

◆루나 사태, 돌아온 합수단 1호 사건에 배정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20일 루나·테라 사건과 관련한 고소장을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합수단)에 배당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한동훈 법무부 신임 장관 지시로 2년 4개월 만에 부활한 합수단의 ‘1호 사건’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권 대표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법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테라폼랩스가 투자자들에게 ‘UST를 사서 맡기면 연 20% 수익률을 보장하겠다’고 설명한 앵커 프로토콜 부분이 폰지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견해에 무게가 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테라폼랩스는 운영하는 프로그램 앵커 프로토콜에서 제공하는 연 20% 수익률로 UST 생태계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들였다. 가상화폐 업계는 이에 열광했지만 일각에서는 월가의 유명 헤지펀드들도 선뜻 보장하기 어려운 수익률을 달성하는 부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사기 혐의가 적용될 경우, 검찰이 직접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다. 특경법상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는 피해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에만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서울남부지검에 소장을 제출한 투자자 중 1명의 피해액이 5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다른 고액 투자자들의 문의도 잇따르면서 검찰 직접 수사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테라·루나 발행과 거래 시기 전체를 수사 대상으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가상화폐 시장이 어려워진 가운데 권 대표 측이 얘기한 수익률 보장 등 내용이 수사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LKB(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들이 19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검찰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법무법인 LKB(엘케이비)앤파트너스는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대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복, 김현권, 신재연 변호사. (출처: 연합뉴스)
법무법인 LKB(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들이 19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기 위해 검찰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법무법인 LKB(엘케이비)앤파트너스는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USD(UST) 폭락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대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복, 김현권, 신재연 변호사. (출처: 연합뉴스)

◆세무당국, 조세탈루 혐의로 재조사 들어가나

또 세무당국이 예외적으로 재조사를 벌여 권 대표 등을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앞서 권 대표는 공동창업자 신현성 씨 등과 함께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지난해 서울지방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은 이들이 누락한 법인세와 소득세로 총 500억원 정도를 추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시 세무조사만 진행됐을 뿐 수사기관 고발을 위해 필요한 ‘조세범칙조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단순 탈세가 아니라 범죄 혐의가 있는 조세포탈 사건으로 보고 수사기관에 고발하려면 세무조사를 조세범칙조사로 바꿔야 한다.

관련 법률상 한 번 종결된 사건에 관해서는 재조사가 제한되지만 ‘조세탈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있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재조사가 허용된다.

만일 권 대표가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되면 테라폼랩스와 별도로 개인에 대한 수사가 가능해진다. 검찰은 사기와 조세포탈을 묶는다면 권 대표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권 대표가 현재 해외 체류 중인 데다 테라폼랩스 한국지사는 해산한 상태여서 국내 수사당국이 강제수사를 벌일 대상이 마땅치 않다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서울남부지검은 고소장 내용과 기초적인 사실관계 등을 검토한 뒤 사건을 배당할 방침이다.

비트코인이 미국 금리인상과 루나코인 사태가 겹치며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12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비트코인이 미국 금리인상과 루나코인 사태가 겹치며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 12일 서울 강남구 빗썸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권도형, 개미 반발에도 ‘테라 재건 계획’ 강행

이러한 가운데 권 대표는 테라 블록체인 부활을 위한 투표에 착수했다. 투자자들이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가 기존 루나 소각의 비용을 부담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새로운 투자금을 끌어들이겠다고 밝힌 것이다.

권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새로운 루나·테라 발행과 배분을 골자로 한 투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가 제안한 방안은 테라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소수 투자자(검증인)에게 25%, 필수 개발자 5%, 가격 폭락 전 시점의 모든 루나 보유자 35%, 현재 루나 보유자 10%, UST 보유자에게 25%의 새로운 루나를 배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새로 발행하는 루나의 물량을 10억개로 제한하고 연 7%의 스테이킹(예치) 이익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앞서 연 20%에 달하는 수익률로 루나 사태를 키운 앵커 프로토콜의 사례를 답습한 것이기에 논란이 재차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권 대표의 꿈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투표율은 반을 넘지 않았지만 고래 투자자들이 그의 손을 들어주며 찬성 의견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태다.

테라 블록체인 지갑 사이트 테라스테이션에 따르면 20일 오전 10시 21분 기준 투표율은 45.01%로 이 중 79.09%가 테라 생태계 재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공식 투표를 앞두고 진행된 사전 투표에서 ‘개미(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90% 넘게 반대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과 반대된 상황이다.

이에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루나 보유량이 많을수록 투표권이 많아지는 시스템이 적용됐을뿐더러 투표 시작과 동시에 1135만표가 이미 찬성에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 표의 3%, 안건 가결을 위해 필요한 최소 찬성표의 15%에 해당한다.

테라 블록체인 검증인인 콘스탄틴 보이코-로마놉스키 올노즈 대표는 권 CEO의 테라 부활 제안 및 투표 강행에 대해 “전체 처리 과정이 독재 모델처럼 보인다”며 “이번 투표는 탈중앙화라는 가상화폐 기본 철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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