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자영업자 대출 887.5조원
1년새 14%↑, 1인당 3.5억원
가계보다 대출증가 속도 빨라
빚으로 버티는 자영업자들 절규
“손실보상 너무 적어 생색내기 수준”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들이 빚으로 힘들게 버텨나가고 있지만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정부의 제대로 된 손실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자영업자들은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서울 광진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권이준(43, 남)씨는 “지난 2년간 참았는데 이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지금보다 빚이 더 쌓이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딸이 장사하는 아빠가 멋있다며 매일 가게로 놀러 왔었는데 이제는 오지 못하게 한다”며 “차마 손님이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다”고 눈물을 훔쳤다.
역시 광진구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정우 사장은 “대출을 많이 받은 것은 아니지만, 가게를 운영하기 너무 힘들어 추가 대출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꼭 지금 받아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다. 그 이유는 위드 코로나가 된 후에도 사람들이 전부 술집으로 갔기 때문에 음식점은 여전히 어려웠고, 최근에는 방역 패스까지 더해져 동네장사는 더 어려워졌다. 적자가 계속 쌓여도 정말 대출로 버티는 것이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광진구서 술집을 운영하는 오모(46, 남)씨는 “코로나 이후 매출이 70%가량 줄었다. 식자재비와 인건비 등을 빼고 나니 남는 건 고사하고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고 너무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종로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던 주모(64, 여)씨는 최근 임대 재계약을 앞두고 고민하다 그냥 가게를 접었다. 그는 “가게를 할 때부터 대출을 받았는데, 그것도 다 갚기 전에 코로나로 인해 집세와 인건비를 내기 만만치 않아 대출을 받으며 버텼다. 그러나 더 끌고 가기에는 빚만 더 쌓일 것 같아 가게를 정리했다. 그럼에도 대출빚은 고스란히 남아 앞으로 갚아 나갈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다”고 허탈해하며 애써 웃었다.
용산구 만리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모(60대, 여)씨는 “대출 받은 돈으로 임대료를 겨우 내고 있다”면서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매출 피해가 코로나 이후 커진 것은 똑같은데 옷가게는 시간제한 업종이 아니라서 몇백만원의 손실보상도 못받고 있다. 차라리 시간제한이라도 당해서 보상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는데, 그거도 못받고 있어서 정말 정부가 형평성 없는 잘못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제주도에서 고깃집을 운영 중인 한모(60대, 여)씨는 “우리는 매출이나 손님이 90% 이상 줄어 소위 ‘대박집’에서 ‘쪽박집’이 돼버렸다”고 씁쓸해하며 “정부 지원 대출상품으로 저렴하게 3천만원 정도 대출을 받았지만 결국 이것은 갚아야 될 빚이라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의 빚이 점점 쌓여가는 가운데 실제 많은 자영업자들이 대출로 버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하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887조 5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시기보다 14.2% 늘었다. 특히 자영업자의 대출 증가 속도가 전체 가계대출(10.0%)보다 빠르다는 점이 눈에 뛴다. 이는 곧 가계보다 자영업자들의 대출이 빠르게 늘었다는 얘기다.
자영업자는 올해 3분기까지 578조 1천억원을 은행에서, 309조 5천억원을 비은행권에서 빌린 상태였다. 비은행권 대출 증가율(전년동기대비)은 19.8%로 은행 대출 증가율(11.3%)을 크게 웃돌았다. 자영업자들이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 등의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많이 받은 것인데, 여기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카드론, 보험사, 대부업체 대출까지 합치면 자영업자들이 받은 대출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 1인당 대출은 평균 3억 5천만원으로, 비(非)자영업자(9천만원)의 약 4배 규모다. 업종별 증가율은 도소매(12.7%), 숙박음식(11.8%), 여가서비스(20.1%) 등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대면업종 부문에서 대출이 많이 증가하고 있었다.
이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영업제한(인원, 시간)으로 인해 매출 감소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해 10월 기준으로 숙박음식업과 여가서비스업의 생산지수는 코로나19 이전 2019년 12월과 비교해 89.8%, 72.8% 수준이다.
한은은 내년 3월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끝날 경우 자영업자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1.3%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지원이 유지되는 경우(39.1%)보다 2.2%포인트(p)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자영업자의 대출 가운데 상환 부담이 큰 일시상환대출이 45.6%, 만기 1년 이내 대출이 69.8%(개인사업자대출 기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유예를 연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자영업자들이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어 전문가들도 이들에 대해 제대로 된 손실보상이 이뤄져야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6번의 추경을 진행하면서 120조원 가까이 썼다. 그럼에도 그 돈이 꼭 받아야 될 자영업자들한테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가면서 제대로 사용을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빚만 늘어나고 있다. 손실보상을 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적어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손실보상을 하려면 2020년과 2021년 자영업자들이 피해 본 것에 비례해서 크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막다른 골목에 이른 많은 자영자들이 회생 불가능할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강제로 문을 닫게 하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자영업자들이다”면서 “미국이나 영국은 자영업자들에게 피해규모 80% 이상을 보상 지원했다. 이 덕분에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별로 없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가 손실보상을 너무 적게 해주면서 다들 피해가 막심하다. 하루빨리 손실보상을 크게 해줘야 자영업자들이 살아날 수 있고, 결국은 한국경제 모두 살 수 있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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