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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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 원인에 대한 공적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지난 9일 국토교통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불법 하도급이 참사를 야기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 평당 28만원의 철거공사 비용이 4만원으로 쪼그라든 탓에 위험한 철거 방식이 동원됐고 공사비 약탈로 인해 시민 9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로 이어졌다는 점을 암시했다.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이 불법 하도급이 이루어지는 걸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사위의 참사 원인에 대한 진단의 밑바탕에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혁파하지 못한 정부와 국회, 기업이 참사의 주요 책임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조사 결과에 비추어 볼 때 다단계 수탈구조와 원청의 갑질을 근절시키지 못한다면 같은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안전 참사가 반복되는 것은 언론이 사명을 저버린 탓이 크다.

광주 학동참사가 나자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을 포함한 신문들은 물론 지상파 방송을 포함한 전파 매체들도 앞다투어 질타의 목소리를 냈다. 참사 야기 주범으로 ‘안전불감증’과 잘못된 관행을 지목하는 매체가 많았다. 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매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을 강조했다. 국회의 책임이나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을 묻는 매체는 드물었다. 매체 가운데 다단계 하청구조와 죽음의 외주화 같은 구조적인 원인에 주목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조선일보는 우리나라 신문 가운데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신문이다. 이 매체의 영향력은 신문 자체의 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같은 지향성을 갖고 있는 기업집단과 정치집단이 있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티비조선’이라는 종편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조중동 가운데서도 유독 조선일보가 광주붕괴참사를 야기한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진단을 회피했다. 대기업이나 원청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다단계 하청구조와 죽음의 외주화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꼭 감았다.

조선일보는 참사 직후 ‘광주 건물 붕괴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조금만 주의하고 단계별로 지켜야 할 안전 원칙을 지켰다면 막을 수 있었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사고였다’고 썼다. 구체적으로 위층부터 철거하기로 돼 있는 해체계획서에 맞춰 작업하지 않고 아래층부터 철거한 점, 건물과 버스 정류장이 가까움에도 정류장을 옮기거나 차도를 통제하지 않은 점, 감리자가 현장에 없었던 점, 사람이 많이 다니는 오후 시간에 철거한 점 등을 들었다.

사설은 2년 전 잠원동 사고를 언급하면서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거의 같은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야당 때 모든 사고는 정권 탓인 양 몰아가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는데도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면서 마무리 지었다.

사설 어디에도 조사위에서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한 불법 하도급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고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의 책임 또한 언급되고 있지 않다. 불법 하도급에 대한 지적을 회피하다 보니 공사 단가가 28만원에서 4만원까지 떨어지는 문제 또한 보일 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국회책임을 물을 여지도 없어지고 정권에 대한 상투적인 비판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은 결국 구조적인 원인은 제쳐두고 현장 작업책임자와 감리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물론 현장 작업자나 감리자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감리 계약이 비상주 감리 형태로 된 점과 초저가 수주로 고통받는 재하청업체의 처지를 기억해야 한다. 현장의 안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약탈 구조에 눈을 감으면 근본적인 원인 파악은 불가능해진다.

언론은 비판 기능을 상실하면 존재 의미를 잃게 된다. 지엽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게 언론의 사명 아닐까? 언론이 진실 추구라는 사명을 저버리는 사이 무수한 생명이 죽어 나갔다. ‘깨어있는 언론’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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