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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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여주지역에서 일이 터졌다. 밤 11시 30분경이다. 인적은 드물었다. 사건의 전말은 영상에 담겨 있다. 고등학생들이 나물 팔아 생활하는 60대 할머니에게 담배를 사다 달라고 요구했다. 할머니는 거절했다. 그러자 학생이 할머니를 국화꽃대로 머리와 어깨를 여러 차례 때리면서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할머니가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다. “열일곱, 열일곱, 열일곱” 하면서 반말로 대답했다.

할머니가 몸을 피해 도로를 건너가자 둘이 따라가서 손수레를 번갈아 걷어찼다. 짐이 풀렸고 수레는 부서졌다. 할머니는 황급히 짐을 추슬렀다. 차량이 밀려오기라도 하면 교통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웃어댔다.

할머니를 챙겨드린 한 여성에 따르면 이들은 이전에도 할머니에게 담배 심부름을 강요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담배를 여러 차례 사다 줬다고 한다. 이 여성은 앞으로는 절대로 담배 심부름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담배 심부름을 거절하자 돌아온 건 폭력과 조리돌림이었다. 과자 팔던 또 다른 할머니가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가장 약자로 보이는 사람을 골라 자신들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고 뜻대로 되지 않자 폭력까지 휘둘렀다.

이들은 영상을 찍어 사회연결망서비스에 올렸다. 왜 이런 행동을 한 걸까? 괴롭힘 당하는 장면을 찍는 행위가 찍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한 행위인지 인식하지 못한 걸까? 영상이 이곳저곳으로 퍼져 나가고 많은 매체를 통해 사실이 알려지자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네 명의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재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학교의 교장은 사과문을 냈다. 다른 학교들은 조용하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으로서 깊은 자괴감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책임을 통감한다.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이 교육감은 우리 어른들 입장을 대신 표명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의정부에서는 고등학생 6명이 길 가던 30대 남성을 폭행하거나 방조했다. 그 남성은 결국 숨졌다. 여주에서 학생 집단이 할머니를 괴롭힌 사건과 의정부에서 어른에게 시비를 걸고 폭행을 해서 목숨을 빼앗은 사건은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의 문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힘이 더 세다’ 그러니 ‘당신은 내 말을 듣거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폭의 논리 아니고 무엇인가. 익숙하게 봐온 모습 아닌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우리 사회는 수직적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돼 있다.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지탱되는 사회임에도 이들을 가장 천시한다. 맨 위쪽에 있는 계층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호령하고 지휘하면서 호의호식하는 구조다. 그 결과는 빈익빈 부익부 구조의 고착화, 양극화 사회의 구조화, 약육강식사회의 도래다. 실로 앞이 캄캄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고등학교에서 그대로 재연된 건 아닐까?

우리 조상들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당신 삶의 철학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선조들도 많았을 것이고 지금도 이렇게 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누구나 인격을 존중받고 존엄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람과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냈다면 어떻게 노인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해서 어른을 때리고 짐을 걷어차는 패륜적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필자를 포함해 기성세대는 실패했다. 우리 사회도 실패했다. 실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패를 거울로 삼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를 고쳐나가야 할 책임 역시 기성세대에게 있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기성사회의 책임 문제와는 별도로 청년들이 범한 죄는 확실히 물어야 한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법 집행에 예외를 두거나 온정주의적 태도로 나오는 건 옳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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