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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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사상 최초로 무관중 개최를 시도한 2020 도쿄올림픽은 우리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며 묵직함을 안겼다. 팬데믹 속 도쿄올림픽에 대한 일본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가운데 열렸지만, 세계 언론들의 우려와는 달리, 막상 뚜껑을 열자 다른 모습이 속속 드러났다.

비록 뜨겁게 박수쳐주고 힘을 전하는 관중은 없었지만 선수들의 페어플레이는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피나는 노력을 통해 얻은 값진 결과는 코로나로 지친 세계인들에게 큰 희망을 보냈다. 특히 메달 획득과는 상관없이 그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는 높이뛰기 우상혁, 다이빙 우하람, 역도 이선미, 근대5종 정진화, 여자 배구팀의 성과는 빛나는 금메달보다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땀범벅이 된 채로 위기를 맞을 때마다 부둥켜안고 용기를 주며 무관중 속에서도 서로 환호와 사랑을 쏟았다.

그러나 이번 도쿄올림픽은 그 어느 올림픽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회였다. 메달 순위는 20년 만에 10위권에서 16위로 밀렸고 효자종목으로 불리는 태권도, 유도, 레슬링이 몰락하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태권도, 유도, 레슬링은 전통적인 금메달 밭이었고, 깜짝 선수들의 등장으로 국민을 설레게 만든 종목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들 종목들은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노골드, 노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어떤 이들은 이전만큼 ‘헝그리 정신’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도 꺼낸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고 시차가 없어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도 유럽이나 미국 경기에 비해서는 용이했을 것이다.

일부 종목들에서 투혼을 보기 힘들었던 국민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일부 체육계 원로들은 이전같이 선수들의 ‘헝그리 정신’도 부족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투기종목 보다는 부상 위험이 적은 기록경기에 참여케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투기종목의 허점을 분석하고 운영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3년 후 파리올림픽에서도 또다시 고전할 수 있다.

야구 결과도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야구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죽기 살기로 했다”며 “한국 야구는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와 실력 차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은 정신력으로 이를 악물면서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모습이 사라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6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800m, 1500m, 3000m)에 오르며 국민 영웅이 됐던 깡마른 소녀 임춘애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당시 언론들은 그를 ‘헝그리 정신’으로 묘사하며 ‘라면 먹고 달린 춘애’가 가난 속에서도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아시아를 제패했다고 대서특필했다.

3년 후 파리올림픽에서는 임춘애의 ‘헝그리 정신’이 더 필요할 것이다. 또한 각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 눈물의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다. 이제는 3년 후를 대비하며 다시 ‘헝그리 정신’을 되새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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