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안양의 고시원에서 살던 탈북민이 목숨을 끊었다. 목숨이 ‘끊겼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표현일 것이다. 고인은 유서에서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고 했다.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40대의 나이인데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인은 2005년에 남한에 왔다. 이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생활했다. 우울증을 앓았고 알콜중독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러 번 치료와 입원을 한 기록이 확인됐다. 고인은 주유소에서 일을 얻었다. 경유차에다 휘발유를 넣는 실수를 해 손해액을 모두 물어주는 일까지 있었다.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컸다는 이야기다. 탈북민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이 제공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공공임대주택에서 떨려나서 고시원을 거처로 삼게 되었을까. 주거 상태가 악화되는 데는 사연이 있다. 어느 날 갑자가 공공임대주택에서 고시원으로 직행하는 경우는 없다. 처음 문제가 생길 때부터 관계 기관이 바로 대응을 했다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시원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이 계속 나오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많은 경우는 묻혀 버린다. 고시원 거주자는 독거로, 또 무연고로 사는 경우가 많고 연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교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고시원에서 삶은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외로움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 절해의 고도에 갇힌 삶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고인은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면서 고향산천과 부모형제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빈곤에 허덕이고 열악한 주거에 신음하는 사람이 목숨을 끊거나 죽음에 내몰린 경우라면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죽음의 원인을 소상히 파악해서 정부기관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해결이 되지 않았는지 면밀히 살펴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야 한다. 사람은 주거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인간적인 거주 공간을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역할을 포기한 공직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사직해야 한다.

고시원은 가난한 학생들과 청년들이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곳이다. 붕어빵에 붕어 없듯이 고시원에 ‘고시생’ 없다. 고시원은 도시빈민굴의 다른 이름이다. 주거권 보장에 실패한 국가 탓에 이윤을 찾아 고시원이 우후죽순으로 양산돼 왔다. 고시원은 주거 정책의 실패, 나아가 국가의 실패를 상징한다.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던 장소가 빈곤층의 거처가 될 때까지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는가? 고도성장을 노래하고 눈부신 강남, 쾌적한 신도시, 랜드 마크를 읊어대던 시간에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쳤던 사람들은 두 평도 못되는 숨 막히는 공간으로 내몰렸다. ‘한강의 기적’을 자랑하던 사이 주거권이 유린되는 참혹한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의 부가 쌓이는 사회는 끔찍한 사회다. 한 평 남짓 또는 두 평 전후의 공간에 옷가지와 생활용품을 쌓아 놓고 겨우 몸을 누인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숨이 턱턱 막힌다는 표현으로는 ‘고시원’의 삶을 드러내지 못한다. 각자 고립된 섬으로 살기 때문에 고시원엔 이웃이 없다. 고시원엔 방음이 되지 않은 탓에 ‘평온한 주거환경’은 상상할 수 없다. 여럿이 함께 있는 공간이어서 공기질 또한 좋지 않다. 낮에도 항상 전기불을 켜야 하는 곳이다.

고시원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 보았는가? 직접 대면하는 사람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고개를 가로 젓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사는 건 못 본 체 한다.

고인은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고 최악의 주거 상태에 내몰려 목숨을 잃었다. 이북에서 이남으로 올 때는 꿈을 안고 왔을 것이다. 탈북민들은 극소수를 빼고 남한에서 빈곤층을 형성한다. 변변한 일자리 마련도 어렵고 소통도 안 되고 알콜중독,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치료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은 현실 속에 고인은 죽어갔다. 획기적인 대책이 없다면 같은 참사가 반복될 것이다.

빈곤한 국민에게 ‘집’을 제공해야 한다. 저소득의 1, 2인 가구, 그 가운데서도 주거 상태가 가장 열악한 지하, 옥탑, 고시원, 쪽방 등 비인간적 주거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지하, 옥탑, 고시원, 쪽방 등의 공간은 폐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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