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갓바위 야경. (제공: 목포시) ⓒ천지일보 2019.2.25
목포 갓바위 야경. (제공: 목포시) ⓒ천지일보 2019.2.25

보행교에서 바라본 ‘갓바위’
동양화 대가 남농 허건 선생
근대극 최초 도입한 김우진
사실주의 연극 완성 차범석
여류소설가 박화성 선생 등
다양한 분야, 문화예술인 多

[천지일보 목포=김미정 기자] 흔히들 목포를 예향 도시라 부른다. 그러나 왜 ‘예향 도시’냐고 물으면 답을 잘하지 못한다. 목포시는 어떻게 ‘예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을까. 그 이유를 목포 갓바위 문화타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윤상준 해설사는 “목포시사 등을 보면 예향이란 말을 쓴 것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을 5명 보유한 곳이 목포”라며 “목포를 예향이라고 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미술 분야 남농 선생, 김환기 화백, 소설 분야에 박화성 여류소설가, 전원일기 극본을 쓴 차범석 선생, 무용가 최청자 선생 등 여타 내놓으라 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갓바위 문화타운에 있는 문예역사관과 목포문학관을 가보면 이분들의 내용을 볼 수 있다. 윤 해설사는 “목포 오거리를 가보면 목포가 예향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일본인 마을과 조선인 마을에 있는 어느 다방, 어딜 가나 동양화 하나씩은 걸려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강점기에도 목포가 3대항 6대 도시라는 기점이 오거리였는데 거기 살던 목포 예술인들의 활동을 본다면 ‘예향’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에 대해 반격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연현상으로 생긴 갓바위

목포문화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갓바위 문화타운을 말하기에 앞서 갓바위를 빼놓을 수 없다.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된 갓바위는 두 사람이 나란히 삿갓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약 8000만년전 자연적으로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다. 갓바위를 보기 위해선 지금의 보행교가 있기 전엔 배를 타고 나가야 볼 수 있었다. 원도심에 있는 근대역사관 2관에는 100여년전 일본인이 바다에서 바라본 갓바위 사진이 있다. 당시 갓바위와 현재 갓바위를 비교해보면 세월이 흐른 만큼 갓 모양이 변형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밤에 보는 갓바위와 인근 평화광장의 야경, 춤추는 음악분수 공연 등이 인기다. 갓바위 문화타운은 목포의 문화 예술의 집적지라고 볼 수 있다. 목포의 역사와 예술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갓바위 보행교 너머에는 문예역사관, 자연사박물관, 남농기념관, 생활도자박물관, 목포문학관 등이 모여 있다. 

목포의 역사와 문화를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목포 갓바위 문화타운 전경. (제공: 목포시) ⓒ천지일보 2019.2.25
목포의 역사와 문화를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목포 갓바위 문화타운 전경. (제공: 목포시) ⓒ천지일보 2019.2.25

◆예향 도시 목포를 확인하다

목포에는 천연기념물이 2개다. 앞서 소개한 갓바위와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신안 압해도 수각류 공룡알 둥지 화석이다. 둥지 화석은 압해대교 공사를 진행하던 중 산을 자른 면에서 발견됐다. 목포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자연역사박물관 옆에 있는 문예역사관을 꼭 찾아봐야 한다. 자연사박물관에서 문예역사관을 가는 길에는 목포상징조형물이 있다. 윤 해설사는 “목포인들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1980년대 목포가 야당 도시로 낙인찍히고 개발권에서 밀려 하락하는 등 좌절하는 모습이라고 해서 없애려고 하다가 이 자리에 놓이게 된 사연이 있다”고 말했다. 

문예역사관을 들어서면 남농 허건 선생의 기증품을 볼 수 있다. 남농 선생이 직접 모은 수석 100여점과 그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서남권의 3대 화가로 꼽히는 남농 허건 선생의 작품은 모두 진품이다. 교과에서나 볼 수 있던 작품을 실물로 볼 수 있다. 1897년 목포의 과거부터 호남지역의 최초 개신교회인 양동교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다녔던 소학교, 조선인들이 다녔던 현 북교초등학교 등 옛 발자취를 연도표를 따라 확인할 수 있다. 목포 오거리에서는 길다방에서 문학가들이 모여 작품을 창간하곤 했다. 목포 문학가, 예술인들의 작품, 그들의 삶에 대한 흔적을 이곳 문예역사관에서 만날 수 있다. 최초의 문예지도 있다. 무형문화재인 이매방 선생, 옥장 장주원 선생에 대한 자료도 있다. 

한편 목포에는 판소리 교습소도 있었다고 한다. 윤 해설사는 “판소리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제, 서편제로 나뉘는데 목포권은 서편제의 고장, 진도는 판소리의 고장이라 부른다”며 “영화 ‘서편제’에 나왔던 오정해도 목포 출신으로 남교동에 있던 판소리 교습소에서 판소리를 배웠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씨의 자료도 전시돼 있다. 

목포문학관 내부에 있는 차범석 선생 집필실 모형. (제공: 목포시) ⓒ천지일보 2019.2.25
목포문학관 내부에 있는 차범석 선생 집필실 모형. (제공: 목포시) ⓒ천지일보 2019.2.25

1935년 발표한 목포의 눈물 축음기판을 비롯해 꽃장식의 거장인 방식에 대한 자료도 있다. 방식은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마이스터 플로리스트’라 불렸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꽃장식을 만들기도 했다. 자연사박물관 오른편에 문예역사관이 있다면 왼편에는 생활도자박물관과 목포문학관이 있다. 목포권에 속한 목포·영암·무안·강진·해남 지역은 도자기 생산에 필수적인 질 좋은 흙과 물, 풍부한 땔감, 바다에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물길을 통한 제품 운송이 편리해 일찍이 사유도기와 고려청자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목포에 선진설비를 갖춘 산업도자공장이 설립돼 본격적인 산업도자기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 목포 상동 버스터미널 뒤편에는 산업도자기 공단이 20여개 정도로 즐비했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목포권 도자기문화가 일제강점기인 1942년도에도 있었던 점을 보면 갓바위 문화타운에 생활도자박물관이 세워진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생활도자박물관을 지나 목포문학관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연극에 근대극을 도입한 김우진,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차범석, 여류소설가로 장편소설을 집필한 박화성, 평론가 김현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차범석 선생은 한국 드라마 사상 최장수로 총 1088회에 걸쳐 방영한 전원일기의 극본을 쓰신 분이다. 예향 도시 목포를 찾는다면 목포 갓바위 문화타운을 둘러보며 목포의 역사와 문학인, 예술인들의 열정을 배우고 느껴보길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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