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등해결 및 사회통합을 위한 한국갈등해결센터 문을 연 강영진 박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자발적 합의로 갈등 해결하는
 사회적 분위기 만들겠다”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한국사회는 산업화·민주화 시대 이후 분출되기 시작한 갈등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갈등이 심화되는 구조로 흘러왔다.

특히 국책사업이나 주민기피시설 등의 유치 여부를 놓고 정부와 주민들이 벌이는 첨예한 갈등은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로 ‘세종시’와 ‘4대강사업’을 꼽을 수 있다.

이 같은 사회분위기를 경험하다보니 ‘갈등을 중재한다’면 납득이 되지만 ‘갈등을 해결한다’고 하면 믿기지 않는 것도 어쩜 당연할지 모른다. 갈등은 도저히 풀리지 않는 퍼즐일까.

아니다. 갈등 이해당사자 간에 만족할 수 있는 갈등해결방법이 있다는 이가 있다. 국내 갈등해결학 박사 1호인 강영진(사진) 씨. 그는 최근 뜻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국사회의 갈등해결과 사회통합을 목표로 ‘한국갈등해결센터(센터)’의 문을 열었다.

일찍이 갈등해결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던 강 박사는 지난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법률대학원 분쟁해결 과정을 거쳐 조지메이슨대학교 갈등해결연구원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갈등해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갈등해결전문가는 전문중조인(Professional Mediator)으로 교육 및 실무훈련 등을 통해 공인자격증을 얻게 된다. 강 박사도 버지니아주 대법원 인증 전문중조인으로 미국 갈등분쟁 현장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갈등해결전문가는 분쟁 당사자를 상담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넘어 양 당사자가 만족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까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이 패하는 형식이 아니다. 유무형의 갈등비용을 줄이고 화합과 상생으로 이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강 박사는 이 같은 체계적인 갈등해결방법이 한국사회에 맞게 적용되기를 바랐다.

강 박사는 “한국갈등해결센터는 전문성과 중립성을 갖춘 민간기구”라며 “센터를 매개로 분배적 협상이나 승패 중심의 심판에서 벗어나 당사자들의 자발적 합의로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센터 이사진 구성도 이채롭다. 보수진영 싱크탱크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시민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보수와 진보 인사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또 권중동 전 노동부장관과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등 주요 단체 전직 대표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눈에 띈다.

강 박사가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공공갈등이다. 그는 공공갈등을 해결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 해묵은 공공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며 성공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강영진 박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참여정부 시절 당시 산업자원부(산자부)는 업계 간 이해관계로 얽혀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전국의 모든 가구와 건물에 설치돼 있는 전기계량기의 교체시기를 두고 문제가 발생했다.

계량법 시행규칙상 기한이 되면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유효기간이 기계식 전기계량기의 경우는 15년인 반면 전자식은 7년이었다.

전자식 업계에서는 디지털기술이 발전했으니 전자식의 유효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한전도 500억 원에 달하는 교체비용을 절감하려면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기계식 생산업체에서는 당연히 반대했다. 수리전문업체도 자사의 조립기반과 연관된 사안이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담당부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강 박사는 산자부 한전 전자식·기계식 전력량계 생산업체, 수리업체 등 각 부문 대표로 위원회를 구성, 문제 핵심인 ‘전자식 전기계량기의 유효기간’의 예측수명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등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해 문제 해결안을 도출했다.

국내외 자료와 실험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자식 전력량계 이론수명은 11.6년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토대로 협상을 벌여 전자식 유효기간은 10년으로 조정해 참석자들이 만족할만한 의견이 나왔다.

강 박사는 “처음 위원회를 구성할 당시만 해도 대부분 기대하지 않았지만 3개월 만에 해결된 셈”이라며 “해묵은 갈등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사회 각 분야에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갈등해결 프로그램을 교육하고 보급해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는 대학원 학위 과정을 개설해 갈등해결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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