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3일 오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가운데 태조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이 공개됐다. 그 옆으로는 태조 왕건의 자리가 비어져 있다. ⓒ천지일보 2018.12.3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3일 오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가운데 태조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이 공개됐다. 그 옆으로는 태조 왕건의 자리가 비어져 있다. ⓒ천지일보 2018.12.3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 877∼943년)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스승인 희랑대사(希朗大師)는 제자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안. 해인사 목조희랑대사상은 인자한 듯한 미소를 짓고 앉아 있었다. 그의 제자를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 했다. 이는 고려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이었다.

◆태조 왕건과 희랑대사

전시는 과거의 장르별 전시와는 달리 고려 미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국외(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4개국 11개 기관을 포함해 총 45개 기관이 소장한 고려 문화재 450여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전시 초반부에 등장하는 희랑대사 조각상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918년 태조 왕건은 분열된 시대를 극복하고 통일국가 고려를 세웠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개경이 새로운 수도가 됐다. 이 시기 동북아시아 지역은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로 격변했다. 고려는 앞선 왕조가 지닌 문화적 전통을 배척하지 않고 열린 태도로 융합했다.

영웅 일대기에는 꼭 위대한 성인을 우연히 만나는 내용이 등장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관음보살을 친견한 승려’의 기록이나 ‘기이한 행적을 보이는 성인과의 만남’도 같은 예다. 성인이 아니어도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꼭 일어난다.

희랑대사의 만남도 그렇다. 희랑대사는 고려 건국 과정에서 태조 왕건을 후원했던 화엄종의 고승이다. 희랑대사는 왕건의 정신적 지주로 후삼국 시대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왔다. 고려 건국 이후에는 왕의 스승이 됐다.

역사적인 인물을 남기기 위해서일까. 이들의 모습은 조각상으로 만들어졌다. 국가 수호의 핵심이 됐던 ‘왕권’과 국가 운영의 ‘정신적 기반’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조각상은 고려시대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각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두 사람의 조각상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전시는 두 인물의 상이 처음으로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고려의 문화 한자리 모여

전시는 고려가 주변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이룬 찬란한 미술과 그 문화적 성취를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출발하는데, 밖으로 열려 있던 사회, 고려의 바다와 육로를 통해 드나든 다양한 물산과 교류 양상을 살펴봤다.

고려 왕실은 최대의 미술 후원자로, 왕실의 주도하에 회화·금속공예품·나전칠기·자기 등 최고급 소재로 새로운 차원의 물질문화가 창조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이 평화적으로 공존했다. 이 가운데 국교라는 큰 지지기반에서 이룩한 불교문화는 정점을 이루며 이후 1100년 동안 다방면에서 찬란한 여정을 보여줬다.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낼 만큼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세 유럽 기독교 수도원의 수도사의 일과가 성경을 베껴 쓰는 일과 기도로 이루어졌듯이, 고려의 승려도 경전을 직접 베껴 쓰며 사경을 제작했다. 필사의 전통에서 인쇄로의 전환은 세계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었다. 인쇄 문화는 수도원과 사찰, 성경과 경전이라는 신앙 공간, 종교의 성전을 매개로 꽃피우기도 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은 4일부터 내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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