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북한의 남침에 의해 1950년 6월 25일에 터진 한국전쟁은 남하하는 공산침략 세력에 맞서 민주진영이 이를 저지한 국제 대전(大戰)이었다. 당시 북한 수상 김일성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최고 권력자였던 수상 스탈린을 졸라대어 남침 허락을 받아 냈다.

동시에 6.25전쟁 전 해인 1949년 중국 대륙의 공산 통일에 성공해 의기양양해 있던 중국 모택동의 지원 약속을 얻어내는데도 성공한다. 드디어 그는 동족상잔의 모험을 감행한다.

그날 새벽 4시 정각,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군의 막강한 포대들이 일제히 깊은 잠에 빠진 무방비 상태의 남쪽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무자비하게 불을 뿜는 포성과 함께 스탈린이 제공한 막강 화력의 탱크들이 강대국들의 흥정에 의해 남북을 갈라놓았던 38선을 단숨에 돌파했다.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이 광풍(狂風)처럼 남으로 몰아쳤다.

전쟁 개시 불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다. 한 달 반이 지난 8월 9일께는 낙동강까지 전선이 밀렸다. 하마터면 이 땅이 김일성의 수중에 들어갈 뻔했다.

이 위험천만한 상황은 전쟁 개시 두 달 열흘째인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진두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극적으로 뒤집힌다. 허리가 잘린 북한군은 지리멸렬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우리의 소원이던 남북통일이 눈앞에 보였다.

하지만 꽁꽁 언 압록강을 건너 산악지역에 숨어있던 모택동이 보낸 중국 공산 대병력의 참전으로 유엔군은 심대한 타격을 입고 다시 남쪽으로 패퇴를 거듭해야 했다. 민족의 통일을 눈앞에 두고서 원통하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모두 297만 명을 인민지원군 형식으로 북한에 파병했다. 급기야는 1951년 1월 4일 다시 서울을 내주었다. 한국전쟁사에 나오는 쓰라린 기억의 1.4후퇴가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빼앗긴 서울은 두 달 보름 뒤인 그해 3월 18일 전열을 가다듬고 재공세에 나선 유엔군에 의해 탈환(奪還)된다. 이후 전투는 서울 북방과 지금의 휴전선 사이에서 지루하고 치열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1953년 7월 17일 휴전 협정의 체결로 총성이 멎었다.

이렇게 무려 3년여에 걸쳐 치러진 6.25 한국전쟁은 참혹한 파괴와 살육(殺戮)의 연속이었다.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이 되풀이 되면서 남북한을 합해 모두 4백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냈다. 전 국토는 피아(彼我)의 포격과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도시와 산업시설은 잿더미가 되고 산림은 불에 타 아름답던 산(山)들은 벌건 민둥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휴전선이 설정되어 국토는 다시 분단되고 가족 상봉의 길이 막힌 1천만 명에 달하는 통한(痛恨)의 이산가족이 양산됐다.

그나마 절반의 남쪽이라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주도에 의해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를 도운 군대 파견국 16개국과 4개 의료 지원국 덕분이다. 그것은 필시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사망자 3만 7천 명, 행불자를 포함해 무려 6만 3천여 명에 달하는 자국 장병들을 희생시켰다.

심지어 유엔군 사령관이던 밴플리트 대장의 아들이 미 공군 폭격기 조종사로 출격했다가 전사하기도 했다. 이런 고귀한 희생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를 힘겹게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

이를 우리가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보은(報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도리이며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완벽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전쟁을 잊으면 전쟁의 위기가 온다(忘戰必危)’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한다.

한편 한국전쟁에서 공산 침략 세력으로 참전한 중국이 지불한 대가는 더욱 엄청나다. 인명 피해규모가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따르더라도 18만 명이며 비공식 집계로는 1백여만 명까지로 추산된다. 모택동의 장남 모안영(毛岸英)도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

그가 미군기의 폭격으로 전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얘기다. 그 분풀이로 모택동이 한국전쟁에 더 핏발을 세우고 덤벼들었는지 모른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6.25 한국전쟁은 피아 모두에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피해를 안긴 참혹하고 잔인한 전쟁이었다. 우리 민족끼리의 동족상잔의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대전쟁이었다. 올해가 그 전쟁이 있은 지 60주년이다.

우리는 이 기간 무(無)에서 피와 땀으로 얼룩진 기적을 창조해 내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착시켰고 평화와 번영의 땅을 일구어 냈다.

이런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 기억에서 잊혀 가는 6.25 한국전쟁을 아프게 곱씹어보고 우리의 분열되고 해이된 마음을 다잡는 60주년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북녘 동포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우리 품 안에 안을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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