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AP/뉴시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위치한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22일(현지시각) 총격이 발생해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상공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모습. 2024.03.23.
[모스크=AP/뉴시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위치한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22일(현지시각) 총격이 발생해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상공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모습. 2024.03.23.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록 콘서트를 보려고 6000여명이 모여있던 공연장에 돌연 총탄이 빗발치면서 현장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무차별 총격에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쏟아졌는데, 괴한들이 사용한 무기는 전쟁에서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돌격소총’이었다.

참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승해 정권을 굳힌 이후에 벌어졌다.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해 ‘현대판 차르’에 오르자마자 그가 있던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가 테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뚫린 셈이다.

22일(현지시간) 저녁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에 있는 대형 공연장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무차별 총격이 벌어져 62명이 숨지고 146명이 다쳤다고 러시아 타스와 로이터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직전 발표의 40명의 사망자, 100여명의 부상자 수보다 크게 불어난 규모다. 사상자 중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여성·노인들도 여럿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다음 날 새벽인 23일 러 조사위원회(ICRF)는 테러 희생자가 93명으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현재 부상자 107명이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22일(현지시각) 공개된 영상 사진에 무장 괴한들이 러시아 모스크바 서쪽 크로쿠스 시청 공연장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있다. 현지 당국은 크로쿠스 시청 공연장에 무장괴한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 최소 60명이 숨지고 14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슬람국가(IS)는 이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AP/뉴시스) 2024.03.23.
22일(현지시각) 공개된 영상 사진에 무장 괴한들이 러시아 모스크바 서쪽 크로쿠스 시청 공연장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있다. 현지 당국은 크로쿠스 시청 공연장에 무장괴한이 난입해 총기를 난사, 최소 60명이 숨지고 14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슬람국가(IS)는 이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AP/뉴시스) 2024.03.23.

이번 참사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수백명의 어린이 등 1000명 이상을 인질로 잡고 364명의 사망자를 낸 ‘2004년 베슬란 학교 사건’ 이후 러시아 민간에 대한 최악의 공격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사망자는 지금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러 보건 당국에 따르면 현재 100명 이상이 다친 상태로, 그중 수십명이 위독한 상태다. 한국인 사상자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러시아 대사관 측은 전했다.

이날 저녁 공연장에서는 ‘피크닉(Picnic)’이라는 러시아 유명 록 밴드가 공연할 예정이었다. 공연장은 6200석 규모였다. 표가 매진된 것으로 볼 때 참사 당시 6000명 안팎의 관중들이 모여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에 따르면 무장괴한 최소 4명이 공연장에 침입해 로비와 공연장 내 관람객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앉아 있던 관람객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괴한들의 모습과 함께 로비에 누워있는 다수의 시신들도 목격됐다. 로비와 공연장 내에서 비명이 울리면서 인파가 출구로 몰려드는 모습도 비쳤다. 한 목격자는 “모두가 도망쳤다. 비명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달려갔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대형 화재까지 발생해 팬들이 대피소로 몰려들었다. 공연장 화재 면적이 3000㎡에 달하고 화염에 휩싸인 공연장 지붕이 무너졌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다. 테러범들이 총기를 난사한 뒤 수류탄 또는 방화용 소이탄으로 추정되는 폭발물을 던져 화재가 발생하는 모습을 봤다는 러 현지 매체 기자의 주장도 나왔다.

◆러 ‘무자비한 보복’ 예고

이번 참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7일 대선에서 압승해 정권을 굳힌 뒤 불과 닷새 만에 발생했다. 참사가 발생한 공연장도 러 크렘린궁(대통령실)에서 불과 20㎞ 떨어진 곳이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모스크바 외곽이라고는 하나 지하철과 순환도로 시내와 긴밀히 연결된 곳이다.

22일(현지시간) 총격 테러가 벌어진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인근을 러시아 경찰들이 순찰하고 있다. (출처: 모스크바 EPA=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총격 테러가 벌어진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인근을 러시아 경찰들이 순찰하고 있다. (출처: 모스크바 EPA=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23일 새벽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한 보안 책임자들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고 크렘린궁이 이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국가원수는 필요한 모든 지시를 내렸다”고 했고, 회의에 참석한 러시아 부총리는 푸틴 대통령이 “모든 이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의사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사고 직후 2100만명이 넘는 광대한 수도권을 대상으로 공항, 교통 허브 및 수도 전역의 보안을 강화했다. 전국의 모든 대규모 공개 행사도 취소됐다.

특히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피비린내 나는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가 규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배후가) 우크라이나 정권의 테러리스트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모두 찾아 무자비하게 파괴될 것”이라며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다.

사건 직후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테러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러 수사 당국은 칼라시니코프 자동 소총, 여러 개의 예비 탄창이 달린 조끼, 그리고 탄피가 담긴 가방 사진을 공개했다. 러시아 일부 언론에서는 흰색 승용차에 타고 있던 괴한 2명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후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용의자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FSB 국장은 이날 새벽 테러 행위에 직접 가담한 테러 용의자 4명 전원을 모두 포함해 11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로부터 400여km 떨어진 브랸스크 지역까지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고서다.

알렉산더 킨슈테인 현지 의원에 따르면 추격 과정에서 총격이 벌어졌고 차량이 전복됐다. 이후 용의자가 경찰의 지시에 불복해 인근 숲으로 도주했다가 수색 끝에 결국 붙잡혔다. 용의자들이 탑승한 차량에서는 권총과 타지키스탄 여권 등이 발견됐다고도 했다.

◆IS “우리가 한 일” 미-러는 ‘공방’

이슬람 무장세력 IS(이슬람국가)는 성명을 내고 자신들이 총격 사건의 배후라고 자처했으나 이렇다 할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총격 사건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 (AFP/연합뉴스) 2024.03.23.
총격 사건 발생한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 (AFP/연합뉴스) 2024.03.23.

이날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진 직후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은 “(IS 전투원들이) 수백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고 해당 장소를 크게 파괴한 뒤 무사히 기지로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인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우크라의 어떠한 개입도 부인했다.

미국 백악관도 희생자를 애도하는 가운데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가 연루된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러시아 측의 지적이 이어졌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로시야24 방송에 나와 “미국은 비극 속에서 어떤 근거로 누군가가 죄가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느냐”면서 “미국이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즉시 내놔야 하고,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백악관은 누구에게도 죄가 없다고 할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참사는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관이 모스크바 공격 계획이 임박했다고 자국민 등에게 경고한 지 불과 2주 만에 이뤄졌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한 소식통은 이번 공격이 IS 소행이라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몇주 전부터 러시아에 적절하게 경고해왔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러시아가 2015년 시리아에서 정부군과 손잡고 내전에 개입, 당시 시리아와 이라크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IS를 격멸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거론됐다. 이번 참사는 이 같은 러시아의 개입에 따른 보복성 공격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우방국 중국뿐 아니라 유럽 각국, 아랍 강대국들과 구소련 공화국들도 이번 참사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이날 위로 전문을 통해 “테러 공격으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중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반대하고 테러 행위를 강하게 규탄한다”면서 “국가 안보와 안정을 수호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노력을 확고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악질적이고 비겁한 테러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23일 외교부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 공격의 희생자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러시아 국민과 슬픔을 함께한다”면서 “신속한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의 배후가 명백히 밝혀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러시아 총격 화재 테러 발생한 크로커스 공연장. (출처: 연합뉴스)
러시아 총격 화재 테러 발생한 크로커스 공연장.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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