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의대광풍에 정보통신(ICT)강국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최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년 대학 정시모집에서 대기업 계약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학생이 속출했다. 대부분 의대에 중복 합격해 이탈한 것이란 분석이다.

의대에 인재들이 몰리는 의대광풍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면서 졸업 후 큰 보상을 받고 장래성도 보장 받으면서 직업 안정성도 높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포함해 연세대, 고려대 등 총 3개 대학 자연 계열의 미등록 인원은 856명으로, 작년(697명)보다 1.2배 늘었다. 서울대 자연 계열 정시모집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인원이 5명 중 1명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2024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자연 계열 769명을 모집했으나 이 가운데 164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자연 계열 정시 합격자의 21.3%가 미등록한 셈이다. 자연 계열 정시 합격자 가운데 미등록 인원은 작년(88명)의 2배 가까이 늘었다. 미등록률 역시 작년(12.2%)보다 1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올해 처음으로 선발한 첨단융합학부의 경우 73명 모집에 12명(16.4%)이 미등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공학부의 경우 일반전형 27명 가운데 9명(33.3%)이 등록을 포기했다. 서울대 자연 계열 미등록 인원이 대폭 늘어난 것은 의대에 중복 합격한 인원들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정시모집 결과 모집인원 25명에 추가합격자를 포함한 55명(220.0%)이 등록을 포기했다. 지난해 등록 포기율(130.0%)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연세대 컴퓨터과학과도 35명 모집에 64명이 미등록해 미등록률이 182.9%를 기록했다. 이 역시 지난해(120.6%)보다 높아진 것이며, 디스플레이융합공학 역시 미등록률이 85.7%로 전년(81.8%)보다 상승했다.

고려대의 경우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반도체공학과가 10명 모집에 10명이 등록을 포기(미등록률 100%)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의 미등록률은 140.0%(지난해 50.0%), 현대자동차 계약학과인 고려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 미등록률은 105.0%(지난해 50.0%)로 모두 전년 대비 상승했다.

계약학과는 반도체, 컴퓨터 등 기업이 첨단인력을 수혈받기 위해 학교와 함께 만든 학과다. 이 학과에 진학한 학생은 취업을 보장받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국내 굴지의 정보통신(ICT) 대기업이 채용을 담보해도 학생들이 의대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첨단산업 특히 정보통신(ICT)산업 분야의 인력난이 심각하다. 첨단산업분야에 고급인력이 부족하고 기피 하면 이는 산업경쟁력 저하와 바로 직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6대 첨단산업에서 한국의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수년간 1위를 유지한 반면 한국은 2018년 2위에서 2022년 5위로 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의료분야도 수요에 맞게 공급을 확대해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ICT 등 첨단분야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성장엔진이 식는다. 또한 국민은 제때 합당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증원을 대다수 국민이 찬성하는 이유다. 의료인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사직서 제출과 근무를 중단 등 의료현장에서 집단 이탈해서는 안 된다.

정부도 합리적인 의료인의 요구는 수용하되 과거와 같이 의료인의 집단행위에 의대정원 증원을 후퇴하고 굴복해서는 안 된다. 국민도 일시적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의료인을 설득하는데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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