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

이번 설 연휴 때는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설 극장가에는 대형 영화보다 중소 영화들이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소풍’은 제작비 12억원의 저예산 영화이고, ‘도그데이즈’는 82억원, ‘데드맨’은 75억원의 순제작비를 들여 만든 모두 100억원 미만의 영화다.

이전 같으면 100억 이상의 대형 영화들이 흥행 붐을 주도해야 하지만, 최근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외계+인 2부’ 등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흥행 실패로 극장을 찾는 관객수가 뚝 떨어지면서 극장가에 다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코로나 때부터 OTT 우세가 굳어지고 영화관 관람료의 상승으로 관객들의 발길은 현저히 줄어드는 중이다.

이번 설 연휴에 대형 영화들이 사라진 이유는 더 이상의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장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괜히 100억~200억원대의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영화를 내놓았다가 참패를 맛본다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때일수록 강한 중소 영화들이 힘을 내야 한다.

중소 영화는 개봉 초반 만듦새에 대한 입소문이 중요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도 개봉 날 흥행 속도가 느렸지만 탄탄한 시나리오와 스토리 전개에 대한 입소문이 크게 퍼지면서 흥행했다. 톱스타 없는 영화 ‘육사오(645)’도 제작비 50억원대 규모 중소 영화였지만 팍팍한 현실을 떠나 웃음을 제공한 코미디의 힘으로 흥행을 이끌었다. 육사오는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조화롭게 구성하고 제법 느슨하고 코믹하게 스토리와 플롯을 배치하며 지속적인 웃음을 제공해 보란 듯이 성공했다.

현재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침체기를 겪는 상황 속에서 웰메이드 중소 영화들의 질주는 침체한 극장가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중소 영화, 독립영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 올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작품의 다양성이 지속돼야 관객들은 영화관에 다시 노크할 것이다. 흥행만을 노리고 과거 인기였던 소재를 되풀이하거나 기존 시리즈 속편 제작에 집중한다면 지친 관객들은 오히려 더 OTT에 집중할지도 모른다.

한국 영화계는 지난해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만들어냈지만, 소위 ‘중박 영화’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관객 수가 감소하고 매출액이 줄어들면서, 투자사들도 영화 작품에 투자를 더욱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OTT에 집중된 영화 관람 패턴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 또 더 이상 명절 특수를 노리기도 어렵다. 지난해 추석 때도 개봉한 5편의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는커녕 100만명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개봉 시기도 밀리면서 제작 단계에 투입했던 투자금 회수도 원활하지 않다. 여기에, 배우 출연료와 제작비는 늘어나면서 제작단가는 이전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올해는 허리를 뒷받침해 줄 탄탄한 아이디어로 승부한 중소 영화들의 흥행이 이어져야 한다. 관객들도 신선한 소재로 만들어진 50억대 미만의 작은 영화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나리오는 좋은데 스케일이 작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 못해 엎어지는 영화들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각색을 투자자의 눈높이로 다시 해오면 투자하겠다는 경우도 흔하다.

규모는 작아도 재미있는 소재, 뛰어난 상상력, 공감 가는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줄 수 있는 관객들의 자세도 필요하다. 기막힌 상상력과 이야기로 생생한 영화 한 편을 보러온 관객들을 웃게 만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의 출격만이 허리가 빠진 현 한국 영화계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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