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사람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덥네” “춥네”하며 호들갑을 떨어도 땅속에 의연히 뿌리박은 나무는 자연의 지엄한 이치와 교감하면서 제가 알아서 철 따라 잎 내고 꽃을 피운다.

그런데 모든 꽃이 지고 난 후 홀로 피는 꽃이 있다. 이 꽃을 ‘납매(臘梅)’라고 한다.

조선 세종 때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이 쓴 <양화록(養花錄)>에 ‘서향화(瑞香花)’라는 꽃이 나온다. 기품 있는 꽃이라 하였고, 그 진한 향기를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서향화 즉 납매는 매화의 품류에 송지조황(宋之晁黃)이라고 했다.

이 꽃을 중국에서는 황금다(黃金茶), 꽃이 노랗다 하여 황매(黃梅), 황매화(黃梅花), 금매(金梅), 당매(唐梅)라고도 하며, 장대해지면 아위화(阿魏花)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서향화나 아위화보다 납매로 더 알려져 있다.

꽃 지름은 2㎝ 안팎으로 꽃받침과 꽃잎은 여러 개다. 바깥쪽 꽃잎들은 크고 황색을 띠며, 안쪽 꽃잎들은 작고 암자색을 띤다.

납매의 ‘납(臘)’은 섣달 즉 음력 12월을 뜻하니 엄동설한에 피는 매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이 꽃은 눈 속에서 노란 꽃을 피운다하여 황설리화(黃雪裏花)라고 했으며, 꽃이 없는 추운 겨울에 손님처럼 찾아온다하여 한객(寒客)이라고도 했다.

조선 선조 때의 의병이었던 금계(錦溪) 노인(魯認, 1566~1622)은 선조 32년(1599년) 6월 25일 명나라 홍여눌(洪汝訥)의 집에서 병풍에 그려 있는 사시 팔경의 절구를 지어 달라는 청을 듣고 시를 지었는데, 마지막 여덟 번째 병풍의 내용이 다음과 같다.

“臘梅早發窓前笑(납매조발창전소, 섣달 매화 일찍 피어 창 앞에서 웃고) 凍雪隨風亂舞楹(동설수풍란무영, 찬 눈은 바람 따라 기둥에 난무하네). 騷人却訝花零落(소인각아화영낙, 시인은 꽃이 지는가 보아) 故下階邊手弄英(고하계변수논영, 섬돌 가에 내려가서 꽃송이를 만지네).”

이 시에는 엄동설한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외로움을 밀랍처럼 부드럽고 노란 매화의 잎을 만지며 달래는 시인의 시정(詩情)이 담겨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역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납매 한 그루를 뜨락 한 모퉁이에 심어 두고 쓸쓸한 마음을 달랬다’는 구절이 있다.

납매화의 뿌리와 줄기를 <귀주민간방약집(貴州民間方藥集)>에서는 철쾌자(鐵筷子), 철강차(鐵鋼叉), 와조시(瓦鳥柴)라고 하며 <귀양민간약초(貴陽民間藥草)>에서는 철석풍(鐵石風)이라고 부르고 설리화(雪裏花)라고도 부른다.

납매화 꽃의 맛은 달고 조금 쓰다. 더위 먹은 것을 물리치며 진액을 생기게 하는 효능이 있다. 심번구갈(心煩口渴), 백일해, 소아 홍역, 열병번갈(熱病煩渴), 흉민(胸悶), 해수, 화상을 치료한다.

납매의 꽃은 1~2월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리거나 불에 말린다.

<귀양민간약초(貴陽民間藥草)>에 ‘철쾌자화 12g을 끓는 물에 담가 복용한다’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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