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전라도 만석꾼 집에서는 대략 20가지의 젓갈을 놓고 먹었다고 한다. 여수, 순천, 목포에서 온 장사꾼들로부터 재료를 구했다. 그 가운데 고흥의 ‘진석화젓’은 빠질 리 없다.

고흥 굴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고 맛이 달다. 고흥은 바다의 지리적 특성이 더해지면서 고흥 굴을 명품으로 만들었다. 고흥 앞바다의 평균 수심은 아주 얕다. 물살이 얕은 바닥을 헤집기 때문에 뻘로 인해 물이 뿌옇다. 그래서 고흥 굴은 물속에 떠다니는 먹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고, 수하식임에도 ‘뻘맛’이 풍부하다. 다량의 미네랄이 풍미를 더하는 것이다. 

1938년 6월 1일 자 ‘동아일보’에 “고흥군의 명물의 하나인 해산물 석화(굴)는 유달리 맛도 조코 자양분도 만흐며 생산도 풍부하다. 일본 내지에서 제일 유명한 광도산(廣島産)보다도 질(質)로나 양(量)으로나 유명하야 그 판로가 조선 각지는 물론 중남지방면 까지 수출하야”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유명했다. 이 기사를 보더라도 고흥군의 석화가 얼마나 유명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렇듯 고흥이 석화(굴)로 유명한 것과 함께 고흥에 가면 다른 지역에서는 접해 볼 수 없는 ‘진석화젓’이라는 유명한 굴 젓갈이 있다.

어리굴젓은 붉은빛이 감도는 데 비해 ‘진석화젓’은 거무스름한 빛깔이 난다. 특히 ‘진석화젓’은 해를 묵힐수록 색이 검고 감칠맛이 난다.

​고흥 사람들은 ‘진석화젓’을 담는 시기는 매화꽃이 피고 쑥이 막 나올 무렵 굴이 알이 배기 전에 담는다고 한다.

봄철에 알밴 굴의 껍질을 걸러내고 씻어서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다. 굴 무게의 20%의 천일염을 섞어서 한 달 정도 숙성시킨다. 그런 후 굴은 남기고 거기에서 나온 밑 물만 따라서 가장 약한 불로 하루를 달여 준다. 이때 밑 물이 졸아들면 다시마 육수와 메주콩 삶은 물을 섞어서 수시로 첨가해 준다.

달인 물이 완전히 식으면 남겨 놓은 굴에 부어 준다. 보름 간격으로 3~4회를 반복한 후 1년 이상 숙성시킨 것이 ‘진석화젓’이다. 손이 많이 가고 긴 시간을 발효시켜야 드디어 제맛을 낼 수 있다.

이렇게 삭힌 굴과 장을 가르기 한다. 이렇게 가른 굴장을 24시간 끓인다. 건더기는 그냥 굴젓으로 먹고, 밑 물은 맛있는 굴 소스가 된다.

오래된 ‘진석화젓’은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와 맛이 아주 독특하다.

이 ‘진석화젓’을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시원한 바다향이 나는 굴의 고소한 맛을 즐길 수가 있다. 

야채를 볶거나 볶음밥을 만들 때 넣으면 그 감칠맛이 음식의 풍미를 높여 주니 신기한 고흥의 전통음식이다.

이 ‘진석화젓’은 1776년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이 엮은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도 소개되어 있다.

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양과 강장의 대표적인 식재료로 사랑받고 있다. 철분, 동, 망간, 요오드, 인, 칼슘 등 미네랄이 풍부하다. 거기에 당질이 대부분 글리코겐으로 이뤄져서, 소화가 잘 되고 흡수가 빠르다. 어린이나 노약자, 환자 등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먹을거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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