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닷커피 카페에서 진행된 배우 이정현 인터뷰.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현정] 억척스럽게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쓰리잡에다 잠까지 줄이는 등 기본적인 생활을 고스란히 접은 맹목적인 순수함의 결정체와도 같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속 이정현은 왠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블랙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꼬집으며 그녀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복수해 나가는 이정현의 ‘수남’은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만큼 이제 것과는 다른 그것이었다.

지난 6일 이정현은 서울 중구 신당동 인근 카페에서 천지일보와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남을 연기하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세상은 이런 여린 여자를 괴롭히고 짓누르는데 본인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수남의 세상은 오로지 해피엔딩이에요. 맑고 순수한 사람이라서. 남편의 불행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갖고 있어 더욱 밝아지려고 한 수남이 매우 불쌍했어요.”

자격증만 14개를 보유하며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수남은 취직 후 같은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잠도 줄여가며 열심히 일했지만 늘어나는 것은 빚뿐인 수남은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에 대립하는 아랫동네 주민에게 직접 서명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과 통쾌한 복수를 담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순수한 만큼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해피엔딩을 꿈꾸는 수남은 무엇보다 이정현의 가슴을 울리게 했다.

영화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나날이 빚만 늘어가는 ‘5포 세대’를 품고 있는 우리 시대를 비판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 수남을 움직이게 하는 건 로맨스다. 이정현은 수남의 로맨스가 자신과 매우 닮아있다고 한다.

“수남을 연기하면서 가장 대입되는 부분이 사랑관이었죠. 수남이나 저나 일편단심. 남자친구가 생기면 다 올인하는 성격에다 오래 만나는 편이죠. 삼 년, 오 년 이렇게 만나는 편인데 수남도 남편 하나 바라보면서 희생하잖아요. 참 많이 닮아서 더 공감했고 속으로 많이 울었던 작품이죠.”

무대 위에서 마치 혜성처럼 등장해 우리에게 테크노 리듬을 선물처럼 안겨주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냈던 이정현. 가수로 더 큰 조명을 받았지만 그녀는 꾸준히 작품을 통해서 배우의 입지를 다져왔다.

애초에 그녀는 배우였다. 연예계도 ‘꽃잎’을 통해 입문해 드라마 ‘일곱개의 숟가락’ ‘아름다운 날들’ ‘대왕 세종’과 영화 ‘파란만장’ ‘범죄소년’ ‘명량’ 등으로 쉬지 않고 연기활동을 펼쳐왔다.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 인터뷰.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정현의 필모그래프는 갑자기 그녀가 가수활동을 보류하고 연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

중앙대 연영과 출신인 이정현은 연예계 활동으로 9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고 윤종빈 감독과는 학교 동기다. 학교에서 연출 공부를 했을 정도로 영화 연출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이정현은 40대가 되면 작품을 연출하고 싶은 소망도 있다.

“영화 ‘꽃잎’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당시엔 나이가 어려서 배역이 한정적이라 연기 폭이 좁아져서 답답함을 느꼈어요. 어리니깐 에너지는 더 넘치는데 한정적이니깐 답답한 거죠. 그러다 열아홉에 테크노 음악을 접했는데 사실 쇼크였어요. 매우 좋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수로 전향하게 된 것 같아요. 답답함을 가수로 풀었던 셈이야. 그런데 ‘꽃잎’ 통해서 신들린 연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와’를 부를 때도 신들린 가수라는 수식어가 붙는 거예요. 시나리오 섭외가 오면 공포물에 귀신 역, 이렇게만 들어와서 또 연기 폭이 좁아지더라고요(웃음).”

배우에게 작품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은 매우 힘들다고 한다. 이정현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체구와 동안 이미지의 그녀가 파워풀한 무대를 선보이는 반전 매력에 대중은 찬사를 보냈지만 그만큼 틀도 함께 만들어져 본의 아니게 이정현은 연기의 폭이 한정되는 시기를 맞았다.

잠시 힘들어하던 시절, 중국 활동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던 그녀는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으로 국내에 복귀하면서 ‘범죄소년’ ‘명량’을 넘어 이번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기하게 됐다.

처음부터 그리고 언제나 배우였다. 이정현은. 그래서인지 이정현의 음악무대는 소품, 의상, 안무, 메시지까지 하나의 작품을 보는 착각이 들게 했던 것 같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홍보문구에서 ‘단지, 행복해 지고 싶었어요’라는 수남의 카피 대사가 적혀있다. 맞다. 그러고 보면 수남을 보고 이정현이 더 와 닿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은 수남과 이정현이 닮았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속 수남은 관객의 마음에 가깝게 그리고 깊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 인터뷰. (사진촬영: 이혜림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말미에 ‘무대에 서는 것이 행복해 열심히 소품도 만들고 무대 디자인도 만들었고 연기하는 게 좋아서 캐릭터에 맞는 의상, 메이크업도 연구했다’라고 덧붙인 이정현은 다방면에서 꽃을 피우는 멀티 크리에이티브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 이정현 주연의 안국진 감독 연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지난 13일 개봉해 절찬 상영 중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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