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신라 대찰 황룡사는 아쉽게도 고려 고종 시기 몽고 침입 때 불타 소실됐다. 사학자들은 이 사찰이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이 사찰에는 신라 삼보(三寶) 중의 하나였던 금동 불상(장육상)과 목조9층탑이 있었는데 연기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황룡사 터에는 당시 초석과 불상을 안치했던 깨진 석조물이 남아있다. 경주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만약 이 사찰이 지금 그대로 있었다면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재 당국이 황룡사 탑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지부진하다.

대부분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축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봄철 화재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해진다.

지난 1980년대 필자가 조사해 충북도 문화재로 지정한 충북 안내면 가산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도 화마로 잃었다. 임진전쟁 때 중봉 조헌 선생의 기의(起義) 장소로 유명했던 밤티에 있는 가산사는 조선시대 사찰이었다.

이 사찰 법당에 모셔졌던 목조불상은 복장에서 400년 전인 청나라 강희(康熙)연간 17세기 명문이 발견돼 조선시대 목조불상의 편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이 유물에 대한 자료마저 찾을 수 없다.

조선 정조대왕의 명으로 규장각에서 인출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저서 송자대전(宋子大全) 판각(板刻)은 본래 왕명으로 충북 괴산 화양서원에 소장돼 있었다. 그런데 조선말 불의의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지금 대전 송촌에 있는 판각은 후손들이 일제시기 복간한 것이다. 당시 목판에 새긴 1만여장의 판각이 있었다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됐을 게다. 화재는 이처럼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는 최대의 적이다.

한 통계를 보니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사찰, 사당 등 문화재 화재건수가 24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귀중한 문화유산 200여건이 잿더미가 됐다는 계산이다.

문화재청은 얼마 전 강릉 화재로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방해정(放海亭) 일부가 소실됐고, 경포호 주변에 있는 작은 정자인 ‘상영정’도 전소됐다고 발표했다.

경포대(강원도 유형문화재 6호)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1326AD(고려 충숙왕 13년) 지중추부사 박숙에 의해 창건된 건물이다. 바다에서 떨어져 나온 경포호와 함께 동해안의 뛰어난 절승지로 이름난 곳이다.

옛 단가(短歌)에 강릉 경포대를 노래한 것이 바로 ‘강상풍월’이다. 판소리를 공부하는 이들이 처음 배우게 되는 단가는 자연을 사랑하고 여기에 동화돼 살았던 옛 선비들의 풍류가 가득 담겨 있다.

강상에 둥둥 떴는 배 풍월 실러 가는 밴가/ 십리장강 벽파상(十里長江碧波上)에 왕래하던 거룻배(去來船)/ 오호상연월(五湖上烟月) 속의 범상공(范相公) 노던 밴가/ 이배 저배 다 버리고 한송정(寒松亭) 들어가/ 길고 긴 솔을 베어 조그만 허게 배 무어 타고/ 술과 안주 많이 실어 술렁 배 띄워라/ 강릉(江陵) 경포대(鏡浦臺)로 구경가세…(하략)

그리고는 ‘자라 등에 저 달을 싣고 우리 고향 경포대로 어서 가자’고 한다. 자연 속에서 나물 먹고 물마시며 사는 초연한 선비의 심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산불 예방과 발생 후 대응에는 주민과 행정, 소방당국의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중요하다. 아름다운 산수와 사찰 문화재가 많은 충북 영동군의 올해 1호 군수 특별 지시는 ‘산불 예방’이라고 한다. 정영철 군수부터 전 공무원들이 방화복을 입고 경계 근무에 나서는 등 긴장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철저한 대비와 경계의식이 사전 산불을 예방하고 중요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첩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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