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페루 아레키파에서 주민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친척들을 위해 산소 탱크를 다시 채우려고 줄을 섰다. 페루는 델타 변이 확산세로 지난 21일부터 엄격한 봉쇄에 돌입했다. (출처: 뉴시스)
25일(현지시간) 페루 아레키파에서 주민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친척들을 위해 산소 탱크를 다시 채우려고 줄을 섰다. 페루는 델타 변이 확산세로 지난 21일부터 엄격한 봉쇄에 돌입했다. (출처: 뉴시스)

대유행 18개월째, 변수 ‘델타’ 출현

‘규제 강화 vs 바이러스 공존’ 선택

[천지일보=이솜 기자] 런던에서 뉴욕과 홍콩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염병 이전으로 정상화할 계획을 뒤엎을 수 있는 와일드카드로 부상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크게 늘면서 관광과 여행이 재개되고 있음에도 인도에서 처음 확인된 델타 변이의 확산은 정상적인 여름에 대한 희망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이 변이가 이미 바이러스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를 더 악화시키고 있으며 엄격한 국경 통제와 규제로 ‘코로나 제로’를 만들려는데 신중한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은 델타에 대한 대책으로 더 엄격한 제한을 꺼내든 반면 싱가포르와 같은 다른 나라들은 발병 후 18개월이 되는 지금이 ‘일상을 꾸려갈 때’라며 바이러스와의 공존에 나서고 있다.

◆각국서 델타發 비상… 백신 접종률 높은 서방, 재개방 추세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델타 변이가 백신 접종을 늘려야 할 시급한 필요성과 동시에 ‘확진자 0명’ 또는 ‘바이러스와 공존’을 선택하는 데 따른 고통을 극대화시켰다고 분석했다.

5월 말 이후 감염자가 6배 이상 급증해 당국이 완전 재개방을 7월 19일로 연기한 영국에서는 현재 변이 바이러스가 신규 확진자의 약 99%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지난 23일 이 변이가 8월 말까지 유럽연합(EU) 내에서 발생한 신규 감염자의 9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5일 모든 EU 회원국이 영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격리할 것을 촉구하면서 유럽 대륙이 이 변이의 급속한 확산으로 “살얼음판 위에 있다”고 경고했다.

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도 현재 델타 변이가 미국 신규 감염 사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6%이라며 “몇 주 내 미국에서 지배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신 접종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 이 변이는 확진자 폭증에 기름을 붓고 있으며 최근 자카르타 당국은 수도의 특정 지역을 봉쇄하기로 했다.

570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1회 이상 접종을 받은 싱가포르에서도 델타 변이가 확산하면서 발병률이 커지는 추세다. 홍콩 보건당국은 홍콩 공항 직원이 첫 번째 델타 감염자로 확인되자 23일 일부 주거 구역을 봉쇄했다.

호주에서는 최근 뉴사우스웨일스주 당국이 델타 감염자가 확인되자 규제 조치를 다시 시행했다.

기존의 백신이 델타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음이 알려지면서 백신 접종 속도를 내는 나라와 지역은 경제 활성화라는 과제를 안은 상태에서 어느 정도까지 규제를 완화해야하는지도 문제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는 EU의 백신 접종 여행자들에게 국경을 개방하라는 권고에 따라 최근 여행이나 사회적 거리 제한을 완화했다. 인구의 80% 이상이 최소 1회 접종을 받은 영국에서는 매일 1만 5천여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만 사망률은 거의 늘지 않았다. 그러나 의학 전문가들은 입원과 사망자는 전형적으로 몇 주 지연된 후 나타난다고 말한다.

켄트 대학의 바이러스학 강사인 제레미 로스만은 비록 영국의 높인 백신 접종률이 사망자를 무디게 하겠지만 이 변이의 급속한 확산은 전염병 이전의 여름에 대한 유럽의 희망을 꺾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스만은 “변이 사례가 이미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델타가 유럽의 재개방을 방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아시아와 태평양의 여러 국가에서 채택한 더욱 강력한 접근 방식은 이들 국가의 건강과 경제 모두를 훨씬 보호할 수 있게 했다.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지속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외곽 귤랑의 공립묘지에서 이슬람 성직자가 코로나19로 사망한 한 남성을 매장하는 동안 유족들과 기도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델타 변이로 확진자 수가 크게 늘었다. (출처: 뉴시스)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외곽 귤랑의 공립묘지에서 이슬람 성직자가 코로나19로 사망한 한 남성을 매장하는 동안 유족들과 기도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델타 변이로 확진자 수가 크게 늘었다. (출처: 뉴시스)

◆싱가포르, 공존 택해… “‘코로나 제로’라는 종교적 믿음 버려야”

그러나 확진자 수를 낮게 유지해 온 아시아 태평양의 많은 국가들은 이미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 5월 맥켈 연구소는 호주의 국경 폐쇄로 매일 2억 3백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정했으며 홍콩에서는 2019년과 2020년 6분기 연속 국내총생산(GDP)이 사상 최악으로 떨어진 후 올해 1분기에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홍콩대 리카싱 의학부 부교수인 카렌 A는 “면역성 측면에서 지금껏 코로나19 환자를 낮게 유지하는 데 성공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1년 전보다 그다지 부유하지 않다”며 여기에 백신 접종률이 낮은 홍콩과 같은 지역에 델타 변이가 퍼지면 많은 수의 입원자와 사망자까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결국엔 감염자 수를 완화하는 동시에 경제 정상화를 시킬 수 있는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콩과학기술대 공공정책학과 도널드 로 교수는 SCMP에 “변이의 출현은 결국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변이가 많다는 사실은 결국 코로나19가 풍토병(endemic)이 될 것이고,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 모두가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변이의 존재는 더 많은 규제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비용 편익 관점에서 볼 때 전염성이 뛰어난 변이는 ‘코로나 제로’와 같은 일정한 바이러스 억제 수준을 달성하려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국이 엄격한 봉쇄에서 완화로의 전환을 고려할 때라고 덧붙였다.

로 교수는 “코로나19가 풍토병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과학자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초기 전염병 단계에서 필요했던 억제 접근법은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장관들은 지난 24일 스트레이츠타임스에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우리 가운데서도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당국은 일일 사례 갱신에서 벗어나 코로나19를 ‘독감과 같이 훨씬 덜 위협적인 질병’으로 전환하고 전쟁에 지친 사람들이 정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정책에 포함할 계획이다.

뉴사우스웨일스대 지지 포스터 경제학과 교수는 변이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게 공포 기계에 기름을 붓는 겪이며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가 코로나19가 언젠가는 깨끗이 사라질 것이라는 ‘종교적 열망’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스터 교수는 “우리가 이 광기를 더 오래 방치할수록 다른 나라들은 이 모든 것이 재앙적인 실수였음을 깨달으면서 호주는 더 뒤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AP/뉴시스]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 앞에서 코로나19 봉쇄 해제 연기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려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델타'가 확산하면서 애초 이달 21일 해제하려던 봉쇄조치를 7월 19일로 4주간 연기한다고 밝혔다.
[런던=AP/뉴시스]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 앞에서 코로나19 봉쇄 해제 연기에 대한 항의 시위가 열려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델타'가 확산하면서 애초 이달 21일 해제하려던 봉쇄조치를 7월 19일로 4주간 연기한다고 밝혔다.

◆“전염성·입원율 높은 델타 확산국에 백신 집중돼야”

현재 최소 85개국에 퍼지고 있는 델타 변이는 영국에서 처음 확인된 알파 변이보다 전염성이 60%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변이 자체는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변이보다 전염성이 약 50% 더 높다.

완전한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이 심각한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보호되고 있지만 델타는 또한 다른 변이들에 비해 백신에 더 강한 내성을 보인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25일(현지시간) 델타가 “지금까지 확인된 변이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전염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배분할 백신이 없어 실망했다”며 “부국들이 개발도상국들과 백신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지구촌이 실패하고 있으며 수십년 전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위기 때와 2009년 돼지 독감 대유행 기간 동안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당시 가난한 나라들은 대유행이 끝난 후에야 백신을 받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부국에서 HIV(인체먼역결핍바이러스)가 유행한 이후 저소득 국가에 항바이러스치료제(ARV)가 도달하는 데 10년이 걸렸다”며 “이를 또 반복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이날 사이언스지는 영국의 초기 데이터를 인용해 델타가 알파보다 병원에 입원시킬 가능성도 2배 더 높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백신 수급이 부족한 아프리카 각국이 특히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스캐처원 대학의 바이러스학자 안젤라 라스무센은 사이언스에 “델타가 증가하는 곳으로 백신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