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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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3일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3박 5일간 실무방문 성격을 띤 방미는 영부인도 동반하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가 등장 후 두 번째로 직접 맞이한 외국 정상이다. 일본 스가가 첫 번째 정상이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있어 일본지위가 한국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사회에서 외교는 “철저한 자국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전통주의적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은 자국과 전쟁했던 일본이 이제는 미운 것보다, 중국을 견제하고 잠시 흔들리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복원하는 데 필요하다.

일본도 미국의 신대통령 만남 없이 자국 내에서나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노정된다. 항상 미국 신정부가 시작하면 가장 먼저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인 이유이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현실적으로 한국 대통령은 일본 수상보다 미국 신정부 수반을 늦게 만나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그러면서 자위한다. 실질적 성과가 중요하다. 맞다.

문제는 외교에서 100%가 없기에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가는 노력들이 요망된다. 금번 방미는 단적으로 외교에서 전형을 그나마 보여주고 있다. 소위 BBC(배터리, 백신, 칩)정상회담이라고 칭할 수 있는 한미 정상회담은 상호 원하는 것들을 얻었다. 바이든은 집권직후 선거 캠페인 중 줄곧 썼던 마스크를 지속적으로 TV에 달고 나왔다. 코로나19를 종식시키는 일을 가장 우선에 두고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자국민에게 백신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접종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백신을 통해 세계 주도국의 지위를 회복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정도였다. 노력은 서서히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백신이 남을 정도다. 8천만명분은 외국으로 반출하겠다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한국은 55만명분을 받게 됐다. 미국과 공조해 삼성 바이오와 SK사이언스에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시스템을 획득했다. 독보적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자동차 전기 배터리도, 미국은 한국 때문에 안정적으로 기술과 더불어 생산량을 점차적으로 확보하는 길을 얻었다. 반도체 칩도 삼성의 투자로 대만의 TSMC와 함께 생산하는 미국 내의 물량들을 향후 안정적으로 확보함은 물론 개발자로서의 지위를 계속 누리는 호기를 잡았다. 공동성명에는 싱가포르 북미합의와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이 항상 핵심이익이라고 강조하는 대만에 관한 내용이 들어갔다.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원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실무진 의제에 빠졌던 중국 견제 기구 ‘쿼드’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정도가 삽입됐다. 한국도 거의 받고 미국이 원하는 바를 해주었지만, 조미항중(助美抗中)회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가 떠오른다. 그래도 중국의 양안관계가 있듯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실용외교의 길을 뚜벅뚜벅 가는 것이 향후에도 한국이 나아가야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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