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빛나다

박명용(1940 ~ 2008)

키 작은 들꽃
몇 송이
풀 속에 숨다.
낮출 대로 낮춘
달팽이 하나
제 몸에 숨다.
보석보다 더 소중한
수줍음
빗속에 빛나다.

 

 

[시평]

작은 것, 하찮게 보이는 것, 그리고 수줍어하는 것. 이런 것들을 우리는 흔히 얕잡아 보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작으므로, 하찮게 보이므로, 수줍어하므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스스로를 낮추고 낮춰 숨기기가 일쑤이므로, 그래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것을 눈여겨 보지도 않고, 얕잡아, 우습게 보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나 작다고 해서, 하찮아 보인다고 해서, 수줍어한다고 해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마냥 얕잡아 볼 수만 없는 일이다. 비록 작고, 하찮아 보이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수줍어해도. 그는 그 나름의 존재 이유와 존재해야 하는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큰 걸로 따지면, 힘이 센 것으로 따지면,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따지면, 많고 많은 삼라만상(森羅萬象) 중, 어찌 그만한 것이 없으랴. 그런데도 자신이 가장 큰 것인 양, 가장 힘이 센 것인 양, 자신이 가장 잘난 양 으스대는 모양은 참으로 가관이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참회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곤 한다. 자신이 강한 척하니까, 다른 존재들이 모두 떠받들어 주는 척하니까. 자신의 행동이 가장 정당한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이다.

풀 속에 숨어, 낮출 대로 낮춘, 달팽이 하나, 보석보다 더 소중한 수줍음을 띠며 느릿느릿 세상을 살아가는 그 모습, 큰 것만 지향하고, 이기는 것에만 그 가치를 두고, 빨리 하는 것에 우선을 두는 현대의 삶 속에서, 어쩌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봄 빗속에서 빛나는 보석보다 소중한 달팽이의 수줍음 같은 하찮음, 현대라는 이 시간을 살아가는, 자칫 우리가 잊어버린 우리 모두의 진정한 그 모습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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