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덕권 한국웅변인단체총연합회장이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집무를 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정덕권 한국웅변인단체총연합회 회장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웅변학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성행했지만, 요즘은 다소 보기 드문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당시에는 웅변학원이나 학교에서 웅변대회를 열면 빠질 수 없었던 단골주제가 반공(反共)이었기 때문에 ‘웅변’이라 하면 아주 무겁거나 딱딱한 분위기를 누구나 연상하게 된다.

정덕권(54) 한국웅변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웅변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고자 자연스러운 어투와 어법에 맞게 웅변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를 계몽하는 참다운 웅변인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신념으로 웅변인들 가운데서도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

정덕권 회장은 초등학생 6학년부터 웅변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마이크 잡고 말하는 것을 신기해하며 좋아했던 그에게 동네 이장님은 애향단 활동을 독려하는 방송을 위해 마이크를 종종 건네서 말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웅변을 배우기 시작한 후 교내웅변대회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면서 학교 대표로 여러 웅변대회에 나가곤 했다.

하지만 당시 70년대 초반에는 전국 각 지역에서 큰 도시에만 웅변학원이 1개 있을 정도라 시골학교를 다닌 그는 전문 선생 밑에서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고, 그렇게 배운 사람들과 겨뤘으니 그는 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래도 정 회장은 웅변이 좋아 학창시절 웅변을 즐겼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웅변학원을 자신이 직접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반듯한 웅변대회를 하고 싶어서 직접 개최해 어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학교에서 전혀 지원을 해주지 않아 자신의 하숙비를 털어 대회 시상금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정 회장은 웅변학원을 운영하면서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야심차게 웅변계에 직접 뛰어들었으나 주변에서 경영이 어렵다보니 웅변이 상업화되고 순수성을 잃는다는 생각에 염증을 느껴 운영하던 학원을 10년 만에 정리하게 된다.

이후 회사를 다녔으나 웅변의 끈을 놓지 못해 간간이 정당 개편대회, 군중대회, 궐기대회에 참여해 사회를 보며 웅변인의 기질을 발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 웅변을 제대로 하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 생각해 고심 끝에 정확히 회사월급을 100번째 받는 날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이때가 그의 나이 40세였는데, 불혹의 나이가 됐을 때 정 회장은 본격적으로 웅변을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워나갔다.

웅변계를 새롭게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그는 2013년 한국웅변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현재까지 이끌고 있지만 쉽진 않다. 정 회장이 웅변인의 바른 길을 제시해도 구습에 젖어 고치려고 하지 않는 일부 기존세력들에 의해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정 회장은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힘든 외로운 길을 가고 있지만 고집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우선 웅변계가 경연대회와 연습대회를 구분해서 웅변대회를 열어야 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 교육목적과 경연목적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채 혼재돼 잘못 운영되고 있는 곳이 많다는 것. 그는 “연습대회는 경연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미리 무대 경험을 위한 학습연장선상에서 피드백을 해주는 등의 교육 목적으로 운영돼야 하는데, 일부 분별없는 단체나 개인들이 잘못 운영하는 대회가 웅변의 이미지 실추와 대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회장 취임 후 2번의 경연대회와 10번의 연습대회를 개최했다. 웅변대회를 반듯하고 권위 있게 운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밝혔다. 먼저 현재 민간자격증인 스피치지도사를 국가자격증으로 발전시켜 웅변 자격을 공인화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각 지역마다 직능별 경로당 형태로 웅변인들이 모일 수 있는 회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웅변인이 서로 교통하고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복지 마련이다.

정 회장에 따르면 웅변이 원래는 수사학(修辭學)을 지칭하는 것이다. 수사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효과적 또는 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곧 웅변이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학문인 셈이다. 그런데 100여년 전 일본을 통해 들어오면서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 잘못 전달돼 웅변을 수사로 생각하지 않고, 문장 혹은 글을 수사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

이에 정 회장은 웅변이 본래 수사학으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하도록 회복시키기 위해 어긋난 웅변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웅변이 사실 특정한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특별한 어투로 말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며 “따라서 소리에만 의존한 웅변을 하다 보니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도 쓰는 등 비과학적이고 예절에도 어긋난 웅변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웅변은 바른 언어습관부터 시작돼야 하며 한국어가 훼손되는 것을 웅변이 바로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일들을 하기 위해 그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재정 및 환경 등의 쉽지 않은 점이 있어 그의 마음은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조급해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씩 제대로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웅변인이 계몽인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기 위해서도 웅변대회 주제를 도덕성 회복에 두고 개최하고 있다. 그는 “물질만능으로 인해 도덕성이 실추돼 흉흉한 사회가 됐다”면서 “웅변을 통해 우리사회가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또 “웅변인이 더 화합하고 후진 양성에 힘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대의 웅변은 일방의 말만이 아니다. 쌍방 또는 다자간의 의사소통 수단이 다 웅변이다. 교육계와 사회가 전반적으로 웅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제고함으로써 도구학습으로 그 활용 범위가 넓어져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내비쳤다.

▲ 강의실 벽에 걸린 사자성어 ‘대사자후’에 대해 정덕권 한국웅변인단체총연합회장이 설명하고 있다. 대사자후는 불교에서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에 악마가 굴복하고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사자의 우렁찬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 굴복한다는 의미로 열변을 토하는 연설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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