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별 0~100% 차등 배상
나이·경험·불완전판매 등 고려
ELS 판매·관리 전반으로 부실
대리가입·설명의무 위반 적발

(서울=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4.1.19 
(서울=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4.1.19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금융감독원이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 투자자별로 0~100%까지 차등 배상하는 분쟁조정 기준안을 내놨다. 투자자의 나이, 투자 경험, 불완전판매 정도 등에 따라 판매회사와 투자자별 책임을 각각 반영하는 방식으로 배상 비율이 정해진다.

금감원은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홍콩 H지수 기초 ELS 관련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했다.

기준안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금융사는 투자자 손실에 대해 최저 0%에서 최대 100%의 배상을 해야 한다. 최종 배상 비율은 판매사 기본 배상 비율(20~40%)에 공통 가중분(3~10%)을 더한 뒤, 투자자 고려 요소(±45%), 기타 조정분(±10%)을 고려해 결정된다.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 위반 및 불완전판매 여부에 따라 기본 배상 비율 20∼40%를 적용한다.

금감원은 은행의 경우 판매분 전체를 적합성 원칙 또는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다 보고, 모든 투자자에 대해 20~30%의 기본 배상 비율을 제시했다.

은행에서 발생한 부당권유 등 판매원칙 위반 사례는 기본배상비율이 40%까지 올라갈 방침이다. 증권사의 경우 일괄 지적사항이 확인되지 않아 개별 투자자에 대한 판매원칙 위반이 확인되는 사례를 중심으로 20~40%의 기본배상비율이 적용된다.

금감원은 불완전판매를 유발‧확대한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반영해 은행은 10%p, 증권사는 5%p 수준의 공통가중을 적용했다. 온라인 판매채널은 내부통제 부실 영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감안해 이보다 낮은 은행 5%p, 증권사 3%p를 적용한다.

투자자별로는 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5~15%)인지, ELS 최초가입자(5%)인지 여부에 따라 최대 45%p를 가산하고, ELS 투자 경험(2~25%)이나 금융 지식 수준(5~10%)에 따라 투자자책임에 따른 과실 사유를 배상비율에서 최대 45%p 차감하게 했다.

이외에도 일반화하기 곤란한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기타 조정요인(±10%p)으로 반영된다.

이러한 가운데 홍콩H지수 ELS 상품을 판매한 주요 은행과 증권사가 판매과정에서 무리한 실적경쟁을 조장하거나 고객 투자성향을 고려하지 않는 등 조직적인 관리 미흡으로 불완전판매를 초래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지난 1월 8일부터 이달 8일까지 두 달간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신한증권 등 홍콩H지수 ELS 주요 판매사 11개에 대해 현장 검사를 진행한 결과 ▲판매정책·고객보호 관리체계 미흡 ▲판매시스템 부실 ▲영업점 단위 불완전판매 등 문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은행 등 판매사들은 글로벌 주가지수 변동성이 큰 시기에 영업 목표를 상향 조정하거나 판매한도를 확대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하고, 판매시스템을 부적절하게 설계한 것으로 나타났다.

A은행은 2021년 영업목표 수립 시 자산관리(WM)수수료 중 신탁수수료 목표를 전년 예상실적 대비 56.9% 상향 설정해 전사적 판매를 독려했고, B은행은 2021년 1분기 중 두 차례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실적 데이터를 회사 게시판에 안내한 것으로 조사됐다.

개별 영업점의 판매과정에서는 적합성 원칙을 위반하거나 대리 가입, 서류 변조 등 불완전판매가 속출했다.

특히 고령 투자자 대상으로 한 불완전판매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C은행 판매직원은 87세 투자자의 투자 성향 분석 과정에서 “예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체크하면 가입이 안 되므로 가입할 수 있도록 투자성향을 상향했다”고 임의로 안내했다.

D은행 판매직원은 고객이 내점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직원이 투자성향 진단 설문지, 상품설명서, 가입신청서를 모두 작성 및 서명하고 판매과정 녹취 시 다른 직원이 고객 역할을 하도록 해 허위로 절차를 진행했다.

금감원은 확인된 위법 부당행위에 대해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기관·임직원 제재나 과징금·과태료 등 엄중히 조치할 예정이다. 다만 해당 판매사의 고객 피해배상,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 사후 수습 노력에 대해서는 관련 기준과 절차에 따라 참작할 계획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번 분쟁조정 기준은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마련됐다”며 “앞으로 이번 기준안에 따라 배상이 원활히 이뤄져서 법적 다툼의 장기화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판매사와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또 “금감원은 향후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위와 함께 ELS 등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예고했다.

한편 지난해 말 기준 홍콩H지수 ELS 손실금액은 지난달 말 수준(5678포인트)이 유지될 경우 총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들어 홍콩H지수 ELS 만기도래액은 2조 2천억원, 총 손실 금액은 1조 2천억원, 손실률은 53.5%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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