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북한이 축구를 체제 선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축구를 최고 국민 스포츠로 삼아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며 정권 홍보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북한 축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시아 축구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오르며 국제적 명성을 드높였다. 이후 북한은 남북한 스포츠 대결에서 축구를 앞세워 체제 경쟁을 도모해 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7일자 ‘북한을 농락한 작은 브라질 축구클럽(The tiny Brazilian club that fooled North Korea)’ 기사에서 북한의 억압적인 정치체제와 극단적 폐쇄성을 알려 주목을 받았다. 미국 온라인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래틱 축구 기자 잭 랭이 기고한 기사는 북한에서 일어난 코미디 같은 축구 이야기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을 얼마 앞둔 2009년 11월이었다.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월드컵축구대표팀과 브라질의 한 작은 축구클럽팀과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당시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라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당시 한 달 뒤 있을 월드컵 조추첨을 앞두고 ‘영원한 월드컵 우승후보’ 브라질 축구와 실전 경험을 갖고 싶었던 북한은 브라질 3부리그 클럽팀 수준도 안되는 아틀레티코 소로카바라는 팀을 초청했다.

이 팀은 노란색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 색깔을 입었지만 일부 관광객들이 포함해 급조한 것이었다.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진 소도시 소로카바의 한 지역축구클럽팀에 불과했다.

북한 정권은 이 팀을 마치 브라질을 대표하는 팀으로 선전하며 친선경기를 띄우는데 열을 올렸다. 당시 김일성 경기장은 8만 관중이 꽉 차 있었으며, 경기장 밖에서도 2만여명이 몰려 있었다. 킥오프 전에 찍은 한 사진에는 구식 전자 점수판에 ‘PRK 0-0 BRA’라고 쓰여 있었다. 북한과 브라질의 국제경기를 연상시키게 하는 표시였던 것이다. 양국 선수들은 서로 국가를 부르며 경기에 임했다. 결과는 1-1 무승부였다.

이 경기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북한 태생의 문선명 통일교 교주의 적극적인 북한 사업 진출과 관련이 깊다. 브라질 내에서 사업 기반을 탄탄히 쌓았던 문 교주는 ‘축구 황제’ 펠레와 가깝게 지내는 등 브라질 축구에도 관심이 많았다.

아틀레티코 소로카바 클럽팀은 문 교주가 이끄는 한국투자그룹이 인수한 팀이었다. ‘브라질 축구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그는 북한 정권에 북한과 브라질의 친선 경기를 제의해 성사시켰다.

당시 경기에 참가했던 한 브라질 클럽 선수는 “만약 우리가 이 경기에서 이긴다면, 우리는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군인들로 가득 찬 경기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승부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봤다”고 밝혔다.

평양 친선 경기를 가진 이틀 후, 문선명 교주는 자신의 서울 집에서 열린 축하 식사에서 선수들의 노력과 결과에 감사를 표시하며 “우리가 이겼다면 북한 사람들이 정말 화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당시 클럽팀의 한 일원은 회상했다. 문 교주는 무승부가 됐다는 것에 행복해했다는 전언이었다.

북한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 브라질전에서는 지윤남이 골을 터뜨리며 1-2 패배했다. 2차전 상대이자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만난 포르투갈에게는 후반전에서 6골을 내리 실점, 0-7로 대패했다. 코트디부아르에게도 0-3으로 지며 본선 전체 최하위 32위에 그쳤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은둔의 왕국’ 북한에서만 가능한 놀라운 이야기이다. 북한은 아직도 폐쇄의 문을 굳게 걸어둔채 언제든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일어난 일이 언제 든 재현될 수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