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샷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주저주저하는 모습이었다.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추스리려 애를 쓰는 것이 되레 안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1년 6개월간 필드를 얼마나 그립고 가슴을 조려왔던 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윤이나가 징계에서 돌아와 첫 국내 공식 적응 무대를 가졌다.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충남 솔라고CC에서 열린 제41회 OK금융그룹 한국대학골프대회에서다. 이 대회 여자 프로부서 한국체대 2학년에 재학중인 그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이다. 1라운드 3언더파 69타, 2라운드 6언더파 66타로 중간 합계서 3타차 단독 선두에 올랐지만 마지막 3라운드서 1오버파를 추가해 막판 맹추격에 나선 이재윤(건국대)에게 2타차로 뒤지며 8언더파 206타로 아깝게 2위에 머물렀다.

그는 “아직 컨디션이 60% 정도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좀 더 기량을 다듬은 뒤 프로 대회에 나설 생각”이라며 준우승에 만족한다고 했다. 대회 마지막 3라운드 라고코스 13번 파5홀(437야드)에서 그는 챔피언조 동반자 이재윤, 유현조(한국체대), 강정현(중앙대)보다 무려 50야드 이상 더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세컨드 샷을 그린 에지에 떨어뜨린 뒤 3m 버디 퍼팅을 아깝게 놓쳤지만 징계 이전 최고 선수의 장타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번 대학 대회는 2022년 DB그룹 한국여자오픈에서 오구 플레이 논란 등으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던 윤이나가 징계가 풀린 뒤 한국에서 처음 출전한 대회다. 윤이나는 지난달 호주여자프로골프(WPGA) 빅오픈에서 공식 복귀전을 치른 바 있다. 이번 대회 3라운드서 다소 부진했던 것은 호주 대회에서 발을 삐끗한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를 지도하는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 박영민 한국체대 교수는 “그동안 마음 고생을 많이 해 아주 신중해졌다. 샷 스피드도 한창 때 수준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 본인이 천천히 회복해 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이나는 프로로 KLPGA 투어에 나선 2022시즌, 단연 ‘태풍의 눈’이었다. 평균 드라이브거리 263.4517야드로 투어 전체 1위에 올랐고 평균 버디, 버디율, 그린적중률 등 각종 기록이 선두에 서며 ‘장타퀸’ ‘버디퀸’에 등극했다. 프로 무대 첫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시대를 펼치는 듯 했다.

하지만 가혹한 형벌이 찾아왔다. 이전 대회에서 ‘오구 플레이’를 했다는 자진신고를 하면서다. 그는 앞서 6월 중순 열린 DB그룹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 대회에서 로스트 볼을 본인의 것으로 착각하고 경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샷 이후 오구 플레이를 신고했다면 2벌타만 받을 수 있었다. 한데 약 한 달 뒤에야 신고를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당시 골프계에서는 윤이나가 오구 플레이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윤이나 측이 이를 인지하고 ‘늦장 신고’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골프협회와 KLPGA는 나란히 3년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2025년 하반기까지 국내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징계 기간을 1년 6개월로 감면해 윤이나는 올 시즌 투어에 복귀했다. 이는 또 다시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다. 명백한 부정 행위를 하고도 징계 감면이 이뤄지자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윤이나는 KLPGA 개막 첫 대회인 오는 4월 두산건설 Weve 챔피언십에는 출전하지 않을 듯하다. 그는 “아직도 선뜻 나서기가 두렵다. 차분히 마음을 정리해 나가는 중이다.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됐다고 판단할 때까지 프로 대회 참가를 보류하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그는 ‘뜨거운 감자’가 된 자신을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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