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문명비판론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종속시키기 위해 동양전통을 왜곡하고 정당화하고 호도하려 했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그는 평생 서양인의 동양인에 대한 인식인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며 반대하는 데 앞장섰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 사고방식에 젖어 우리나라보다 못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동 국가를 상대할 때 이같은 태도가 많이 드러난다. 운동 경기일수록 더하다.

‘아시아 최강’을 자처하던 한국 축구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2로 완패하자 국민적인 질타가 쏟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국 축구가 이 정도 밖에 안됐다니 한심하다’ ‘수비진 엉망! 패스 제대로 되는 게 없어… 뺏기기만 하고’ ‘고질적인 백패스로 뒷걸음치다가 허무하게 골을 먹었다. 이 고질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한국축구 기대 접어야 한다’는 등의 비판이 나왔다.

한국 대표팀은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뮌헨) 등 유럽 빅리거들이 공수에 포진해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까지 받아 우승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천신만고 끝에 4강까지 진출한 한국팀은 예선 조별리그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던 요르단과의 4강 대결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유효슈팅 하나도 제대로 날리지 못하고 시종 압도당한 끝에 0-2로 완패했다. 한국(23위)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요르단(87위)보다 64계단이나 위에 있었으며, 요르단과 상대 전적에서 3승 3무를 기록 중이었는데 이날 사상 첫 패배를 당한 것이다.

이번 아시안컵 대회를 주관하는 AFC는 홈페이지에서 ‘최상의 요르단이 한국을 꺾고 역사적인 결승 진출(Super Jordan stun Korea Republic to reach historical final)’이라는 메인 기사에서 ‘요르단은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상대의 페이스와 투지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대한민국을 꺾고 사상 처음으로 AFC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고 전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중동세는 예전보다 월등히 강력한 전력을 드러냈다. 전통의 중동 강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다 신흥 강호 카타르에 복병 요르단까지 가세했다. 한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축구는 중동의 거센 물결에 희생양이 됐다.

특히 요르단은 기존 아시아 축구 판도를 뒤흔드는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인구 1천만명의 중동 소국 요르단은 그동안 아시안게임이나 아시안컵에서 입상 한번 한 적이 없어 축구 약체로 치부됐었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급상승한 전력으로 복병으로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듯이 축구는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만한 우월의식이나 선민의식으로 상대를 무시하다가 약팀에게 패배할 수가 있다. 한국 축구는 요르단 4강전의 충격적인 패배로 한때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려했던 ‘오리엔탈리즘’처럼 약소국을 무시하는 자세에서 탈피해 새로운 경각심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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