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 등 대법관 12명은 25일 긴급회의를 열고 사법부 운영 방안을 논의한 뒤 “후임 대법원장에 대한 임명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민주당이 원내대표 부재 등의 이유로 본회의를 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에 책임을 지고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이날 본회의 개최 자체가 무산됐던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기가 24일 만료되고 후임 대법원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이날부터 대법원장이 공석이 됐다.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이후 30년 만에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관 13명 중 가장 선임인 안철상 대법관이 이날부터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대법원 업무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법원장 부재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전원합의체 운영에 지장을 준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아 선고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어서다.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가 필요한 후임 대법관 인선 작업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내년 1월에는 안 권한대행과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하기 때문에 후임 대법관 제청 절차가 늦어도 다음 달 초에는 시작돼야 하지만 대법원장이 없는 상태에서는 진행하기 어렵다.

후임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 절차 일정은 유동적이다. 민주당이 26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 후 여야 간 향후 본회의 일정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이라 별도로 논의하지 않으면 이 후보자 동의안 처리는 한 달 반가량 늦어질 수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재명 대표 체포안 가결에 대한 보복성 투표를 이 후보자에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인 만큼 민주당이 반대하면 통과가 불가능하다. 만약 이균용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에 이어 35년 만의 일이다. 민주당이 이 후보자를 낙마시키면, 윤석열 대통령은 다시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해야 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다시 거쳐야 하므로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연말까지 갈 수도 있다.

여야는 후임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준 절차를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 이균용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재산 신고 누락 등 여러 의혹과 도덕성 시비가 제기됐으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해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사항은 대법원장 불가 사유가 아닐 수도 있다. 민주당은 당내 문제와 별개로 대법원장 인준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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