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

박훈정 감독은 과거에 “인간의 본성은 선함보다는 악함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주의 성향을 지닌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폄훼하고 뒷담화하며 자신의 지론을 정당화시킨다.

삶을 살다 보면 선악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인간의 본성은 선함보다는 악함에 치우쳐 있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인간은 모방하는 존재라는 것처럼 인간은 삶 속에서 선함보다는 악함을 자주 모방하고 따라 한다.

현재 개봉 중인 박훈정 감독의 영화 ‘귀공자’는 강렬하면서 빠르다. ‘귀공자’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광기의 추격을 펼친다.

‘귀공자’는 기존 영화에서 킬러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타투나 담배를 피는 대신 콜라를 마시거나 댄디한 비주얼로 새로운 킬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내면은 공포에 젖어있지만 겉으로는 쿨하면서 불안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는 캐릭터를 여실히 드러낸다.

영화 속에는 코코넛 농장부터 폐가, 무에타이 체육관, 별장 등 주인공과 적대자의 팽팽한 대립의 서스펜스 속에서 감각적인 미장센도 한몫한다. 박훈정 감독은 특유의 빠른 호흡과 강렬한 이미지를 날줄과 씨줄로 엮어 마지막에 다른 그림으로 완성 시켰다.

‘귀공자’ 스토리 구조 안에는 미드포인트를 지나 피치로 넘어가는 지점에 등장인물들이 놀라운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을 찾은 ‘마르코’는 적대자에 맞서 영화 끝까지 나약하기만 하다. 피치에 도달했을 때는 전형적인 선과 악의 갈등 구조를 보이며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박훈정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폭력성이 존재한다. 기존 영화 ‘낙원의 밤’에서와 같이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건조한 분위기를 담아내는 것을 넘어 ‘귀공자’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무는 캐릭터들 간의 대치 속에 비장함과 블랙코미디도 곳곳에 엿볼 수 있다. 아울러 박 감독은 이 영화 속에서도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집단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배신하고 치이고 파괴하는 인간은 과연 악한 존재였을까, 선한 존재였을까를 묻기도 한다.

다른 누아르와 달리 ‘귀공자’의 차별성은 차갑고 딱딱하기보다 유약하면서도 개구진 악당 같은 귀공자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다. 상대 적대자에게 장난치듯 악랄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의리’의 카드를 보여주며 빠른 속도로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박 감독의 영화 ‘마녀’가 남성과 여성의 젠더 대결을 그렸다기보다 여성 중심의 서사에서 성인 여성이 아닌 여고생 캐릭터로 승부를 걸었듯이, ‘귀공자’에서는 ‘코피노’ 복서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애틋하고 자연스러운 연출을 했다. 다만 스산한 무언가의 비밀을 감춘 요소들이 기대보다 약하고 어둡고 탁한 이미지로 상영 내내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포인트도 특별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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