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맞아 광화문 일대 예배·퍼레이드
양쪽 고성 욕설 오가며 거친 언쟁 벌어져
일부 신도들 펜스 넘어 경찰 저지하기도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부활절인 9일 전광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측의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우측으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주최로 열린 ‘2023 부활절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0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부활절인 9일 전광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측의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우측으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주최로 열린 ‘2023 부활절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09.

[천지일보=임혜지, 김민희 기자] 9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축일인 부활절을 맞아 전국의 교회와 성당 등에서는 기념 예배, 미사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대부분 해제된 사실상 엔데믹 상황에서도 대부분 신자들은 방역을 우려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부활절을 맞이해 교계 지도자들은 한 목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며 ‘용서’와 ‘화해’, 그리고 ‘일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부활절 행사와 연합예배 등이 열린 서울 도심 일대에서 이러한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목회자와 신도들은 서로를 향해 욕설과 악담을 퍼붓는 등 이념을 둘러싼 개신교의 극심한 분열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시민들의 빈축을 샀다. 

 부활절 퍼레이드에 욕설 쏟아져

“이 자식들이 왜 예배드리는 데 방해해! 여러분 저쪽을 향해서 마귀들과 싸울지라 힘차게 불같이 찬양합시다!”

‘2023년 부활절 기념 연합예배’가 열린 9일 서울 광화문광장. 우측으로 ‘2023년 부활절 퍼레이드’ 행진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회자 조나단 목사가 격양된 목소리로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자 단 아래에 있던 신도 수백여명은 일제히 부활절 퍼레이드 현장을 향해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신도 가운데서는 “저것들을 다 때려 죽여야 된다”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부활절 퍼레이드에 접근하기 위해 경찰 펜스를 넘는 신도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광화문광장과 서울시청 광장 일대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주최로 부활절 퍼레이드가 오후 2시부터 진행됐다. 분열과 투쟁으로 가득한 거리를 평화와 사랑과 화합을 담은 건강한 기독교 문화로 채우기 위해 한교총 측이 국내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마련한 퍼레이드다.

교회와 선교기관, 대안학교, 다문화팀, 유모차 행렬, 대학 의장대, 경찰기마대 등 61개 팀 5000여명이 광화문광장-시청-서울광장 일대 3.4km 구간을 행진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부활절 퍼레이드는 광화문광장을 시작으로 시청 서울광장을 거쳐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진행된다. ⓒ천지일보 2023.04.0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부활절 퍼레이드는 광화문광장을 시작으로 시청 서울광장을 거쳐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진행된다. ⓒ천지일보 2023.04.09.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는 양각 나팔소리가 울려퍼지자 구약시대 언약궤의 모형을 든 제사장들이 발걸음을 뗐다. 아기 천사로 분장한 어린아이들의 모습에 “귀엽다” “이쁘다” “멋있다” 등 감탄사를 내뱉으며 핸드폰을 꺼내 드는 시민들도 곳곳에 보였다.  

비슷한 시각, 광화문 한켠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전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주최한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2호선 시청역에서부터 광화문 사거리까지 수천의 신도들은 ‘태극기’ ‘성조기’ 등을 흔들며 찬양을 불렀다.

부활절 예배였지만 사실상 ‘공산주의 주사파 타도’ 등 색깔론이 난무하는 정치 집회에 가까웠다. 설교에 나선 목사들은 광화문만이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광화문을 믿고 정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 일대에서 부활절 퍼레이드와 한교연과 전 목사 측의 집회가 동시간대 진행된다고 하자 교계에서는 조마조마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전 목사가 그간 한교총 측 목회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해왔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부활절인 9일 전광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측의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일부 신자들이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주최로 열린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항의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0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부활절인 9일 전광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측의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일부 신자들이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주최로 열린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항의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09.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경찰 펜스를 사이에 두고 퍼레이드의 북소리가 연합예배 쪽으로 넘어오자 전 목사 진영에서 “예배를 하는 데 방해를 한다. 이쪽으로 오지말라”며 고성이 나왔다.

이어 “마귀 퍼레이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위장 그리스도인들” “애들까지 동원해서 뭐하는 짓이냐” 등 막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동하지 말라” “뭐라고, 야 이자식아 너 이리와봐” 등 양쪽에서 고성과 함께 거친 언쟁이 벌어졌다. 

경찰 병력은 부활절 연합예배를 에워싸고 퍼레이드에 접근하려는 일부 신도들을 저지했다. 한 목사는 “경찰들 조심해라. 내가 이분들께 말 한마디면 쓸어버릴 수도 있다”며 선동적인 말도 서슴치 않았다.

소란스러웠던 상황은 퍼레이드가 현장을 떠나면서 일단락됐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부활절인 9일 전광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측의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우측으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주최로 열린 ‘2023 부활절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0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부활절인 9일 전광훈 목사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측의 ‘부활절연합예배’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우측으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주최로 열린 ‘2023 부활절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09.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하나의 종교가 갈라져 서로를 향해 막말을 내뱉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최모(38, 남)씨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저렇게까지 쪼개지면 과연 어디에 계실지 궁금하다”며 “서로 하나님을 부르짖으면서 피 터지게 싸우는 모습이 기괴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 한국교회 부활절 예배, 올해도 따로 국밥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는 올해도 반쪽짜리에 그쳤다.

이날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는 한국교회 72개 교단과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가 참여하는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예배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참석했다. 대표 설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백석 총회장이자 한교총 공동회장인 장종현 목사가 나섰다.

윤 대통령은 축전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가 사랑의 실천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구원의 메시지”라며 “예수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우리 정부도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전했다.

한교연을 비롯해 보수 성향의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진보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각각 따로 예배를 개최했다.

한기총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대강당에서 ‘부활과 회복’을 주제로, NCCK는 구세군제일교회에서 ‘슬픔의 시대, 기쁨을 찾는 여정’을 주제로 기념예배를 열었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는 전국 각 본당에서 부활절 미사를 열었다. 서울대교구는 이날 정오에 주교좌 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 앞마당에는 부활 달걀, 화장품, 초콜릿, 와인 등 수익금을 기부하는 나눔 장터가 열려 이목을 끌었다.  “부활 축하드려요”라고 인사하는 신자들의 밝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에 앞서 신도들이 부활절 달걀을 고르고 있다. (출처: 뉴시스)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에 앞서 신도들이 부활절 달걀을 고르고 있다. (출처: 뉴시스)

명동대성당 앞에는 부활절 미사를 드리기 위한 신자들로 긴 줄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만난 세례명 엘리사벳 최모(여, 경기도 수원)씨는 “(개인적으로) 계속 힘든 일이 있었는데 전날부터 마음이 편안했다”며 “부활 다운 부활을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튀르키예 시리아에 힘을 주고, 미얀마에 평화가 오고,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고, 우리나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고 밝혔다. 

세례명 가브리엘라 구지은씨는 “다시 태어나는 부활절 의미처럼 주변 사람들이 그간 근심을 뒤로 하고 새롭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교계 지도자들, ‘통합·용서’ 당부

천주교와 개신교계 지도자들은 각각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부활의 기쁨이 온 세상에 가득하길 축원하며 사회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 먼저 교회의 하나 됨과 회개를 촉구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주님 부활 대축일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이지만 서로 존중하기보다는 분자화, 고립화로 가는 듯해서 안타깝다”면서 “나보다 더 힘든 이웃이 있음에 눈뜨고 따뜻한 손길을 나누며 다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작은 무언가를 시작해 보자”고 당부했다. 

한교총은 “금년 부활절에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화합과 하나 됨을 위하여 기도하자”며 “편 가르기와 이권 다툼으로 나뉘고 갈라진 대한민국 사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낮아짐을 본받아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NCCK는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고 공정을 추구해야 하는 한국교회가 오히려 자신의 권위와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맘몬 앞에 절하며 악과 불평등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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