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근대불교 최고 선승으로 존경받는 인천 용화선원장 송담스님이 지난 9월 중순 조계종단에서 떠나겠다며 탈종을 선언해 불교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종단을 이끄는 자승 총무원장과 원로 스님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종단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의 삼존불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인천 용화선원장 송담스님이 지난 9월 중순 탈종(종단 탈퇴)을 선언했다. 조계종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선언 당시만 해도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전강문도회 스님들이 ‘큰스님의 탈종만은 막아야 한다’면서 송담스님을 찾아뵙고 의중을 살피고자 했으나 만남은 성사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조계종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송담스님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불교계 내에서 송담스님의 입지는 상당히 두텁다. 용주사의 회주를 맡고 있는 스님은 한국불교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경허스님의 법통을 만공스님, 전강스님에 이어 전해 받았다. 송담스님은 조계종 종정(종단 최고어른) 진제스님과 함께 중국 당나라 때 ‘남설봉 북조주’에 빗대어 ‘남진제 북송담’으로 불린다. 그런 송담스님이 탈종을 하게 되면 조계종의 뿌리가 흔들릴 위험이 크다는 것이 불교계의 중론이다.

송담스님이 탈종을 선언한 지 4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조계종은 예상외로 잠잠하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묵묵히 수행을 전념해온 승려들과 재가불자들이 현 집행부의 행태에 일침을 가하며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스님이 조계종을 떠나겠다고 한 이유에 대해 “법보선원과 조계종단의 수행전통이 맞지 않다”고 밝혔다. 다소 의례적인 문투여서 이를 액면 그대로 탈종을 결심하게 된 배경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묵묵히 수좌로서의 길을 가는 유일한 분이라는 평가받는 송담스님이 밝힌 ‘조계종과 수행전통이 맞지 않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스님이 탈종을 선언한 배경에는 주지 선거, 조계종 법인관리법 등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계종 더는 수행집단이 아니다”

수행승과 재가자들도 현 집행부가 종단을 이끌어가며 빚어낸 논란과 파문이 송담스님의 탈종을 부추겼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부의장을 지낸 설조스님(전 불국사 주지)이 이달 초 종단 중진과 원로스님들을 향해 송담스님의 탈종 사태와 관련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스님은 “송담스님이 문도들에 의해 용주사에서 무도한 작태가 벌어졌음에 큰 책임감을 느끼시고 ‘탈종’이라는 극약처방을 하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주사 주지선거 과정에서 불거졌던 승적 논란을 꼬집은 것이다.

설조스님은 “그럼에도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송담스님이 ‘법인법’에 불응하고자 탈종한 것이라는 망발을 하고 있고 나아가 불경한 언급이 나오고 있어 기가 막히다”고 개탄하며 “오늘의 우리 종단은 아주 이상한 지경에 처해 있다. 종단의 원로스님들이 침묵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11일 푸른수행자회는 “종단의 큰어른이신 송담스님의 탈종 선언은 전 종도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며 “현재 불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비승가적 작태들을 보면서 더는 조계종이 수행집단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내린 극약처방”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큰스님의 결단에 사부대중은 엄숙한 자성과 조고각하(자기의 다리 밑을 비추어 돌아보라)의 자세로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라며 “또 1994년 종단을 개혁한 이래 주도세력들은 모두 이런저런 종단의 주요직책을 맡아서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화자찬 한지가 엊그제인데 과거보다 더한 지탄을 국민과 종도들로부터 받고 있다”고 실망을 안기는 현 집행부를 꼬집었다.

◆“정치·권력 물든 조계종”… 사라질 수도

불교 재가단체들도 조계종 집행부의 자정 능력이 사실상 상실되고 세속화돼 가는 종단의 현실을 지적했다. 13일 교단자정센터는 “정치와 권력, 물질과 자리확보로 뒤덮인 조계종단은 자신들이 선출한 법의 상징인 종정 (진제)스님을 막강한 정치력으로 망신을 주고도 자신들의 정치력에 환호한다”며 “또 진정한 조실 (송담)스님에게 오히려 자신들의 잣대에 따른 자기검증과 적응을 요구해 탈종까지 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급기야 재가불자들도 침묵을 깨고 종단 쇄신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청정한 바른 불교를 희망하는 재가불자들의 모임’은 14일 ‘송담스님 탈종에 즈음한 재가불자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재가불자모임은 “조계종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출가 초심을 잊고 종단권력과 목 좋은 유명한 사찰 주지자리를 주고받기 위해 돈과 폭력, 이권으로 맺어진 종단정치가 횡행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들은 청정한 수행자로 추앙받는 (송담)큰스님조차 계실 수 없게 하는 조계종이 과연 한국불교의 법맥을 이은 종단이냐고 반문했다.

재가불자모임은 “송담스님의 ‘할(喝, 선원에서 위엄 있게 꾸짖는 소리)’로 이미 부패한 조계종은 ‘멸빈’을 당했다”면서 지난 9월 12일 송담스님 탈종 선언 이후 ‘더 이상 조계종단은 없다’고 선언했다. 또한 수행자답지 못한 출가자를 스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공양(시주)을 거부하며, 부패·도박·폭력·은처승(내연의 처를 거느린 승려)·정치승을 스님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재가불자모임 우희종 공동대표는 “종단 위기를 보고도 침묵하는 종단의 구조적 부패 현실을 더욱더 개탄한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지난 27일 칼럼니스트 하도겸 박사는 언론에 게재한 송담스님과 관련 칼럼을 통해 “21세기 불교 신자라고 내놓고 말하기 창피해서 신도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는 조계종의 현실이 재가불자로서 오히려 고맙다”며 “각종 의혹을 받는 조계종의 막장드라마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죽음 같은 배신을 연출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도에서 왜 불교가 사라졌는지 속 시원하게 재연을 통해서 가르쳐 줄 것이기에 참으로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종단 내 우려의 목소리에도 조계종은 현재까지 아무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종정 진제스님과 원로스님들도 침묵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최근 조계종 총무부장 정만스님이 “송담스님은 분한 신고를 하시지 않아 현재는 승적이 없으므로 제적원(조계종 승적 취소) 처리조차 할 수 없다”고 밝혀 종도(승려, 불자)들부터 공분을 샀다.

종도들은 송담스님의 경책이 허공의 메아리가 돼서는 안 되며, 종단 정치논리로 왜곡돼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현 집행부가 어떤 입장과 해법을 제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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