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언론인. 칼럼니스트)

 

폼페이시는 76AD 베수비오산의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였다. 아름다웠던 이 항구도시에 살던 2만 명의 인구가운데 10%인 2천명이 희생됐다는 기록이 있다. 시민들의 타락과 방종에 대한 신의 저주로 회자 돼 온 폼페이의 비극은 이 시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

화산재에 묻혔던 도시 발굴은 1백 50년 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2천 년 전 고대 항구도시의 신비가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발굴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정방형의 도시 계획, 원형경기장 화려한 대리석 건축물 등 고대 로마시대의 화려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이곳을 관광했을 때 가장 충격적인 인상은 화산재에 의해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이었다. 어머니의 품속에 죽은 어린아이, 고통 속에 죽어갔던 사람들, 화산을 피해 도망가다 참사를 당한 많은 사람들의 시신 화석은 절박하고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리얼하게 증명하고 있다.

2천 년 전 폼페이의 수준 높은 문화에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대리석 기둥으로 건축된 귀족의 집집마다 타일을 붙인 욕조가 모두 있었고 벽면에는 화려한 여인상들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천장에 그려져 있는 벽화들은 금방 그린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불가(佛家)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화려한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이 벽화 속에 찾아지는데 동양 어느 나라 예술가가 그린 것인지 신비롭기만 하다.

폼페이는 항구도시로 외국의 많은 무역선박이 정박했다. 도시 안에는 윤락가가 있었으며 시민들과 외항선원들은 이곳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여인들과 향락을 즐겼던 것 같다. 남자의 심벌을 저울로 달고 있는 음란한 벽화가 있는 집은 귀족여성들이 드나들었던 호스트바였다고 한다.

요즈음 극장가에선 ‘폼페이 최후의 날‘을 그린 영화가 상영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영화는 재난 영화라기보다 로마 지배자에 대항하는 겔트족의 수난과 순수한 사랑을 그린 헐리웃 작품이다. ‘벤허’풍의 정통 사극으로 진부한 스토리라 실망했지만 고대 도시 폼페이시의 재현과 화산 폭발, 지진, 해일 CG가 볼만하다.

폼페이의 비극은 예측 시스템이 없어 지진과 화산 폭발에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처럼 화산징후를 파악하고 계측 장비들이 작동했다면 2천명이나 되는 시민이 화산재에 묻히지는 않았을 게다.

수년전부터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재 폭발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화산학자들은 이상 징후 현상을 통해 머지않은 장래에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한 전문 교수는 백두산의 1천 년 전 폭발 당시 1200㎞ 떨어진 일본에 5㎝의 화산재가 쌓였던 흔적을 예로 들면서 수도 서울을 비롯한 남한도 화산재로 뒤덮일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다. 폼페이처럼 참사는 아닐지라도 환경을 오염시키고 농사에 피해를 주며 인체의 호흡기의 이상 등 여러 가지 피해를 몰고 올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도 지진발생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역사 기록을 보면 과거 신라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 까지 숱한 지진과 기상이상 징후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작은 지진이긴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에도 65%나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몇 해 전 일부 학자들이 국가재난안전청의 설립을 정부에 건의한 적이 있는데 예산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재난안전청이 발족했더라면 폭설로 인해 지붕이 무너져 내린 경주코오롱리조트 체육관의 참사도 사전에 막지 않았을까. 이 체육관은 6년 동안 한 번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폼페이의 비극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재난에 대한 경각심과 과학적 예측, 사전대비의 필요성을 극명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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