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부랑인들 영장없이 구금
10년간 총 3만 8천여명 수용
사망 657명, 일반인의 13.5배
 
강제수용·노역·사망 등 인정
국가 묵인·외면 속 피해 가중
정부 사과·피해회복 조치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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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생존 피해자 박순이 씨가 오열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0년이 넘게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감금·가혹 행위한 이른바 ‘형제복지원 사건’이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 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4일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됐다. 이는 진실화해위가 재작년 12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하고 지난해 5월 조사에 들어간 지 1년 3개월 만이기도 하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1960년 7월 20일 형제육아원 설립부터 1992년 8월 20일 정신요양원 폐쇄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무고한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민간 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사건을 말한다.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면서 내부에서 자행된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하도록 하는 내무부 훈령 410령(1975)이 확인되면서 인권유린의 근거를 국가가 제공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사회정화가 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및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 시도 등이 밝혀졌다.

◆조사서 사망자 105명 추가 확인

이날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사건에서는 부랑인 단속부터 수용, 시설 운영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횡행했다. 특히 형제복지원 관련 사망자 수는 657명에 달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나 많은 수치다. 사망자 통계 명단 등 14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

또 사망진단서를 조작한 점과 형제복지원 수용자 중 응급 후송 중 사망(DOA) 등 의문의 사망자가 발생한 점 등도 드러났다. 1986년 한해 형제복지원 사망자 수가 135명으로 조사되면서 사망률(4.3%)도 당시 일반 국민 사망률 0.32%보다 13.5배나 높았다. 결핵사망률도 더 높게 나타났다. 1986년 형제복지원의 결핵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인구 결핵사망률 0.014%와 비교해 29.2배나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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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자료집 사진. (제공: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천지일보 2022.08.24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맺은 지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 8000여명에 달한다. 최대 수용자 수는 지난 1984년 4355명에 이른다. 이처럼 경찰 등은 수많은 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는데, 이같은 단속과 내무부 훈령 제410호도 법률유보·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 등을 전부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위원회는 “이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되거나 이들의 허가·지원·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한 사건”이라며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으로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국가가 조직적 묵인·은폐… 보상해야”

국가가 형제복지원의 실태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외면한 정황도 드러났다. 

과거 1982년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 가족이 정부와 수사기관에 수사를 촉구했지만, 오히려 진정인이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고 실형을 선고받은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1986년 보안사령부는 간첩 용의자 수사공작 과정에서 형제복지원에 주목하고 그 실상이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를 유지하는 기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수용자들을 ‘불순분자’ 등으로 평가하며 치안‧안보 차원의 위험 요소로만 인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 1987년 검찰 수사 개시 직후, 보건사회부는 구체적 범법행위가 없다 하더라도 ‘공공의 안정질서’를 위해 부랑인을 강제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서 형제복지원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 지역 모든 기관이 형제복지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아니라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했다”며 “피해자와 가족들이 진정·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을 회유 압박한 정황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조직적인 인권유린이 확인되면서 진실화해위는 과거사정리법 제34조 이하에 따라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과 피해회복·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국가가 각종 시설의 수용·운영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국회는 유엔 강제실종 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하라고 했다. 부산시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조사·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위해 예산 및 규정·조직을 정비하라고 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오랜 시간 밝혀지지 못했던 형제복지원 사건 인권침해 진실규명은 피해자·유가족·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에 진실규명이 이뤄지는 피해자는 신청자 544명 중 지난해 2월까지 접수한 191명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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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하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한종선 대표.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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