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고구려 ‘역사상(力士像)’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사신총은 6세기 후반~7세기 조성된 고분이다. 사면 벽화 가운데 장사급인 반라(半裸) 역사상이 나타난다. 두 역사가 씨름을 하고 있는 그림인데 드러난 상체에 굵은 허벅지, 탄탄한 근육이 두드러지게 표현됐다.역사상은 신장상(神將像)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개는 부처나 탑 혹은 묘역에 세워져 있는 수호신이다. 인왕(仁王)은 강사(剛士)라고도 하며 상체를 벗은 모습에 근육질로 주먹을 쥐거나 방망이를 든 모습이다. 사찰의 인왕문, 명부전이나 탑의 문비
이재준 와당연구가고구려인들은 일월신(日月神)을 고분 벽화 말고도 벽돌 문양에 적용했다. 해는 양(陽)을 상징하는 남신, 달은 음(陰)을 상징하는 여신이다. 이 벽돌에도 남신은 이마에 삼족오가 들어 있는 태양을, 여신은 두꺼비가 있는 달을 이고 있다.고대사서 고구려 기록에 등장하는 고구려 주몽 설화도 해와 달신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달의 여신 하백의 딸 유화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야합해 임신해 알을 낳지 않는가. 달 속에 있는 두꺼비는 여신 설화다. 산해경 회남자(淮南子)에 ‘항아(姮娥)가 아홉 신들을 쏘아 죽인 죄로
이재준 와당 연구가사신(四神)의 하나로 현무(玄武)가 있다. 거북이와 뱀이 서로 얽혀 잡아먹을 듯 싸우고 있는 기상을 나타낸다. 왜 ‘현무’라고 한 것일까.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현(玄),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으므로 무(武)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 수기(水氣)를 맡은 태음신(太陰神)에 비유하기도 한다.고구려인들은 거북을 매우 신성시했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어머니 유화의 도움으로 도망쳐 남쪽으로 올 때 강에 다리를 놓아 도와준 것이 거북이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도 신성한 군주의 출현을 요구하는 백성의 뜻을 신들에게 전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한국역사문화연구회고문 대자는 고졸한 예서… 당나라 서법 설명당대 유행하던 예서체 협서는 행서로 써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자인 역관 김석준(金奭準, 1831~1915)에게 써준 ‘배경민비첩발문(완당전집 권 6)’의 대련 한 면이 낙질로 발견됐다.서울의 한 개인이 소장한 이 유묵은 34㎝x152㎝ 크기로 중국산 홍지인 만년지(紅紙.萬年紙)에 쓰여 진 것이다. 표구도 최근의 것이 아니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가운데 예서 대자로 ‘삭풍추수최야청(朔風秋樹催夜淸)’이라고 쓰고 양 옆으로 행서체로 위에서 아래로
이재준 와당 연구가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이들의 주 신앙이었던 해와 달 신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건축물에 사용했던 벽돌에도 해달 신을 소재로 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벽돌은 지난 40회 소개된 ‘악무전(樂舞塼)’과 크기가 비슷해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짐작된다.왕도였던 지안에 있는 6세기 벽화고분인 오회분 5호묘와 오회분4호묘 벽화에는 해와 달뿐만 아니라 각기 해 달을 머리 위로 받쳐 든 해신(남)과 달신(여)이 그려져 있다. 이 해신과 달신은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복희, 여와 형상이다.해신은 다리가 세 개
이재준 와당연구가대륙의 왕자 고구려 음악은 어땠을까. 어떤 악기로 어떤 음악을 연주하며 살았을까. 재상 왕산악이 만들었다고 기록된 거문고는 고구려인들의 대표적인 악기로 천 수백여년 격조 높은 음악을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다.거문고의 내력을 알려 주는 기록은 삼국사기 악지(樂志)다.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개조해 만든 현악기가 거문고’라는 기록이 있다. 재미있게도 안악 제3호분의 후실 벽화에서 보이는 현악기가 거문고로 보이는데 357AD 시기에 이미 거문고가 연주됐음을 알려준다.거문고는 한자로 현금(玄琴)이라고 쓴다
이재준 와당연구가하트(heart) 모양은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사람의 심장과 비슷해 하트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요즘은 젊은 남녀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모바일에서 제일 많이 주고받는 이모티콘이 바로 하트다. 두 손가락을 마주 잡는 하트, 두 팔을 머리에 올리는 하트 등 다양한 제스처가 있다. 엄지와 검지 끝을 교차해 비트는 하트는 일상에서 주고받는 인사로 자리 잡았다.인간은 언제부터 하트를 사용했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디오니소스 신의 추종자들은 그를 기리는 축제를 할 때 담쟁이덩굴을 몸에 붙이고 제사를
이재준 와당연구가고구려 와당 가운데는 유독 ‘붉은 새’라고 불리는 주작문(朱雀紋)이 많다. 주작은 주오(朱烏), 적오(赤烏)라고도 불리는데 붉은 새를 총칭하며 그 모습은 봉황과 유사하다.벽화를 비롯해 여러 금속제 유물에도 고구려인들은 이 문양을 즐겨 사용했다. 주작은 땅을 밟고 서 있으며 금방이라도 비상을 준비하는 자세다. 역동적인 고구려인의 기상을 닮고 있다. 일부 주작문 와당 가운데는 하늘을 나는 것도 있으며, 자방을 태양으로 삼아 배에 품은 것도 있다.왜 이들은 주작을 이처럼 사랑했을까. 주작은 오방신의 하나로 남쪽을 가리킨다
이재준 와당 연구가인동(忍冬)무늬는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사용해 온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불가에서는 청정한 연꽃과 서로 접합해 사용되어 왔다. 수막새가 연꽃이면 암막새는 인동당초무늬를 배치하는 것이 상례였다.인동무늬는 꽃 모양이 다이아몬드처럼 뾰족하다. 덩굴무늬는 당초문에 비해 굵게 굽어져 있다. 본래는 그리스에서 시작돼 인도를 거쳐 불교미술품과 함께 중국~한반도에 전래 된 것으로 생각된다.백제 가람이었던 익산 미륵사지에서 나온 인동문양 암막새를 삼국시대로 보는 견해가 있다. 작은 파편에 불과 하지만 덩굴무늬가 아름답게 살
글, 사진. 풍산화동양행 이제철전통 민속놀이 시리즈의 세 번째 주화인 ‘영산줄다리기’는 2009년 10월에 발행되었다. 2007년 탈춤, 2008년 강강술래에 이어 영산 줄다리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영산줄다리기란 보름에 경상남도 창녕의 영산면에서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영산의 대보름 축제에서 연행하던 줄다리기는 1930년대에 이르러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1949년)에 한 차례 옛 모습을 되찾는 듯했으나 6·25전쟁으로 종언을 고하였다.이후 1963년 제2회 3·1문화제(현재의 삼일민속문화제)에서
글, 사진. 풍산화동양행 이제철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념주화는 한국은행의 두 번째 자체기획 시리즈로, 2010년 종묘에 이어 2011년에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2012년에는 석굴암과 불국사 기념주화를 발행했다. 이 시리즈는 국민들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 우리 문화 및 자연의 해외 홍보 등에 그 발행 의의가 있다.한국은행은 2007∼2009년의 3년에 걸쳐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놀이를 주제로 1차 시리즈 기념주화를 발행한 바 있다.한국은행은 2010∼2012년 3년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주제로 2차 시리즈 기념주화를 발행할 계획을 세
이재준 와당연구가인도 신화에서 연꽃은 창조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비유는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문구다. 3세기 말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여래흥현경(如來興顯經)에는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는 열 가지 인연을 서술하고 있는데, 부처는 연화의 탄생에 비유되고 있다.그러므로 부처나 보살은 대개 연화좌 위에 안치해 있다. 연화좌의 ‘화’자를 ‘빛날 華(화)’자로 기록하는 것은 부처를 광명의 상징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히는 석등이나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는 탑파
미소가 가장 아름답다는 소위 ‘백제미소불상’.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전 충청북도 문화재 위원) 고문은 본지를 통해 이 불상의 제작 시기를 백제 후기가 아닌 통일신라초기라고 주장한바 있다. 그런데 이 고문은 이번에는 미소불상이 당나라 초기에 제작된 돈황석굴의 유명한 ‘미인 보살상’과 닮은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는 당의 영향을 받은 7세기 후반 통일신라시기 만들어진 보살상이라는 뜻이다. 고대 불상의 경우 시대와 국적을 단정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고문이 재차 강조하는 주장은 무엇일까. 다음 글은 이 고문의 본지 기
이재준 와당 연구가도철(饕餮)은 고대 중국민족이 벽사(辟邪)의 주신으로 삼은 대상이다. 도철가면의 전신은 쓰촨성(泗川省)에서 발견된 3~5천년 전 유적 삼성퇴(三星堆)의 청동 가면이다. 서울에서도 전시회를 통해 삼성퇴 유물이 선을 보였는데 도철을 닮은 가면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구려족 치우 전사들이 쓴 가면은 도철과는 전혀 다르다. 치우상은 전사의 얼굴이지만 도철은 그야말로 괴물 형상으로 도깨비란 명칭도 여기에서 연유했는지 모른다. 고대 한나라 화상전이나 전국시대 반원와당에서도 도철문양을 찾을 수 있다.치우의 전사들은 황제군과 전쟁
글, 사진. 풍산화동양행 이제철전통 민속놀이 시리즈 3차 (2009년) – 영산 줄다리기전통 민속놀이 시리즈의 세 번째 주화인 ‘영산줄다리기’는 2009년 10월에 발행되었다. 2007년 탈춤, 2008년 강강술래에 이어 영산 줄다리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영산줄다리기란 보름에 경상남도 창녕의 영산면에서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영산의 대보름 축제에서 연행하던 줄다리기는 1930년대에 이르러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1949년)에 한 차례 옛 모습을 되찾는 듯했으나 6·25전쟁으로 종언을 고하였다.이후
글. 사진.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2007년 ‘탈춤’을 시작으로 3년간 연례적으로 발행되었던 전통 민속놀이 시리즈의 두 번째 주화 ‘강강술래’는 2008년 10월에 발행됐다.강강술래는 정월 대보름날이나 팔월 한가위에 남부 지방에서 행하는 민속놀이로, 여러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던 민속놀이다.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으로 지정됐고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이다.시리즈 기념주화는 올림픽대회, 월드컵 축구대회 등 국가적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발행하는 행사 기념주화와 달리, 화폐 도안
이재준 와당 연구가고구려 지안 국내성 유적에서는 삼존불상문 외에 좌불(坐佛)을 소재로 한 와당이 여러 점 출토돼 민간에 수장되고 있다. 경주지역에서도 불상문 와당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통일신라 소작이다.그런데 고구려 좌불상문 와당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른 글씨로 나타나 있는 명문이다. 삼존불 와당에는 ‘아황(阿皇)’이라고만 나타나는데, 이 와당에서는 ‘대아황사(大阿皇寺)’라고 되어 있다. 이 좌불상문 명문 와당으로 아황사가 ‘대아황사’로도 불렸음을 알 수가 있다.고대 와당에 ‘大’ 혹은 ‘官’ ‘皇’자가 붙여진 명문와는 궁중이
글. 사진.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2008년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된 ‘건국 60주년’ 기념주화는 국무총리실에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은행에 요청하여 같은 해 8월에 발행됐다.기념사업회는 ‘건국60년 기념주화 발행’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그림·글짓기 공모전’ ‘대학생 사이버 건국 내각’ ‘건국60년 기념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정부의 주도하에 진행했다.기념주화의 앞면에는 휘날리는 태극기의 모습과 함께 기념사업 주제어인 ‘위대한 국민, 기적의 역사’라는 명문이 들어가 있고 뒷면에는 엠블럼이 파란색과 빨강색으로 새겨져
글. 사진.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대한민국 최초 시리즈 기념주화탈춤 기념주화는 한국 전통 민속놀이 시리즈의 첫번째 주화로 2007년 8월에 발행되었다. 전통놀이 시리즈는 이후 ‘강강술래’와 ‘영산줄다리기’가 발행됐으며 사실상 처음으로 한국은행의 자체 기획에 의해 발행된 기념주화이다.이 시리즈는 우리나라 주화제조기술의 발전, 국민들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 우리 문화의 해외 홍보 등에 발행 의의가 있다.엄선된 소전(素錢)으로 정교하게 제조하는 매우 높은 수준의 무결점 주화급으로 제조되었고, 12각형으로 발행되었다. 최대 발행량은 5만
글. 사진.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1946년 500돌을 기념해 공휴일로 공식 지정되었던 한글날이 1990년 단순 기념일로 축소됐다가 2005년 국경일로 다시 승격됐다. 이후 2006년 처음 맞는 한글날을 기념하여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훈민정음 반포 560돌 기념 은화가 발행됐다.한글 기념주화답게 ‘560돌 한글날 기림’이라고 표기한 점과 우리나라 유일의 한글 표기 별전인 '효뎨례의'를 재현했고, 주화 테두리 부분에 문자를 각인하는 레터링(Lettering) 기법을 사용해 훈민정음 창제 당시 사용된 자모 28자를 새겨 넣었다. 고유